어려서 머리가 여물지 못하고 몸도 작았던 시절에, 훨씬 더 자그마한 새를 주운 적이 있다. 싸늘한 바닥에서 가냘픈 날갯죽지를 몇 번이고 파닥거리던 아기 새는 조금도 공중에 뜨지 못하고 마침내 바닥에 머리를 떨어뜨렸다. 린은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자그마한 생물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드러난 배 위에 손을 살짝 대니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숨이 느껴졌다.
불편한 연회를 견디다 못해서 슬쩍 테라스로 빠져나온 참이었다. 연회장에 이 새를 들고 가서 도와달라고 하면 비웃음을 사겠지, 비난받을 짓을 한 거지. 나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새는 도와주어야만 한다. 어쩌지도 못하고 두 손 안에 새를 꼭 쥐고서 찾아간 예배당에서 시스터가 말했다.
“어미에게서 떨어져서 며칠은 방치된 모양이에요. 날개도 많이 상했네요. 좀 더 따뜻한 곳에서 돌보고 지켜봐야 예후를 알 것 같은데, 돌볼 사람이 있을는지 걱정이네요.”
“그러면 제가 집에서 돌볼게요. 새가 날아가는 게 보고 싶어요.”
“이 애가 날 때까지 회복하고 자라려면 못해도 보름은 걸릴 거예요.”
“괜찮아요. 제가 계속 지켜볼게요.”
“도련님이 지나가는 생물에 이렇게 애착을 갖다니 별일이네요. 예배당 여자아이들이 보면 질투하겠어요, 후후.”
“그냥, 날아가는 게 보고 싶을 뿐이에요.”
“네. 그게 문제라면 문제겠네요.”
시스터는 아기 새를 볼 때와 꼭 같은 눈빛으로 어린 린을 내려다보았다.
“한 생명을 길들인다는 일은, 생각보다도 더 무겁답니다. 새가 날지 못할 수도 있어요, 만약의 얘기지만요. 날아간 후에는, 걱정되기 시작할 거예요. 이미 사람 손을 탔는데 바깥에서 괜찮을까, 폭풍을 만나 떨어지지는 않을까. 그래도 정을 주실 건가요? 그리워하고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때, 어떻게 대답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