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머리가 여물지 못하고 몸도 작았던 시절에, 훨씬 더 자그마한 새를 주운 적이 있다. 싸늘한 바닥에서 가냘픈 날갯죽지를 몇 번이고 파닥거리던 아기 새는 조금도 공중에 뜨지 못하고 마침내 바닥에 머리를 떨어뜨렸다. 린은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자그마한 생물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드러난 배 위에 손을 살짝 대니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숨이 느껴졌다.
불편한 연회를 견디다 못해서 슬쩍 테라스로 빠져나온 참이었다. 연회장에 이 새를 들고 가서 도와달라고 하면 비웃음을 사겠지, 비난받을 짓을 한 거지. 나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새는 도와주어야만 한다. 어쩌지도 못하고 두 손 안에 새를 꼭 쥐고서 찾아간 예배당에서 시스터가 말했다.
“어미에게서 떨어져서 며칠은 방치된 모양이에요. 날개도 많이 상했네요. 좀 더 따뜻한 곳에서 돌보고 지켜봐야 예후를 알 것 같은데, 돌볼 사람이 있을는지 걱정이네요.”
“그러면 제가 집에서 돌볼게요. 새가 날아가는 게 보고 싶어요.”
“이 애가 날 때까지 회복하고 자라려면 못해도 보름은 걸릴 거예요.”
“괜찮아요. 제가 계속 지켜볼게요.”
“도련님이 지나가는 생물에 이렇게 애착을 갖다니 별일이네요. 예배당 여자아이들이 보면 질투하겠어요, 후후.”
“그냥, 날아가는 게 보고 싶을 뿐이에요.”
“네. 그게 문제라면 문제겠네요.”
시스터는 아기 새를 볼 때와 꼭 같은 눈빛으로 어린 린을 내려다보았다.
“한 생명을 길들인다는 일은, 생각보다도 더 무겁답니다. 새가 날지 못할 수도 있어요, 만약의 얘기지만요. 날아간 후에는, 걱정되기 시작할 거예요. 이미 사람 손을 탔는데 바깥에서 괜찮을까, 폭풍을 만나 떨어지지는 않을까. 그래도 정을 주실 건가요? 그리워하고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때, 어떻게 대답했었지?
“여, 후배! 이런 데서 졸고 있다니 별일이구만.”
“……크로우 선배님.”
귓가에 시끄럽게 울리는 목소리에 린은 반짝, 눈을 떴다. 꿈이 어딘가 중요한 부분에서 끊긴 것 같아서 영 찝찝했다.
“무슨 꿈을 꾸길래 답지 않게 세상모르고 자나? 고향에 두고 온 여자 친구 꿈이라도 꿨어?”
“이상한 소리 마시고요. 내려오세요.”
귓가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깨 위에 얹혀 있던 무게가 사라졌다. 크로우는 손을 탁탁 털며 벤치에 앉아 있는 린의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데 정말 왜 공원 같은 데서 자고 있냐. 춘곤증……이라기엔 좀 늦지 않았나? 학생회 일 도와준답시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요즘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 것 같네요. 학생회 일은, 제가 좋아서 하는 거고……. 길을 찾기 위해 들어온 학교니까요. 더 정진해야죠.”
“에에이, 딱딱한 소리 하긴. 모처럼 청춘인데 그런 소리 말고 좀 널널하게 즐겨보란 말이지. 조금만 눈을 들면.”
크로우는 머리 위를 가리켰다.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하얗게 만개한 꽃이 나무에 송이송이 피어 있었다. 분명 라이노 꽃은 졌을 시기인데, 하는 생각에 답을 내릴 겨를도 없이, 때맞춰 부는 바람에 꽃잎이 와르르 쏟아졌다. 머리에 붙은 흰 꽃잎을 털어내며 청년은 실없이 웃었다.
“이렇게 예쁘잖아.”
린은 무심코 크로우의 어깨에 손을 올려 꽃잎을 떼어내려다, 선배에게 막 손을 댄 것이 무안해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흠, 그런 말 하실 거면 그냥 널널하게 자는 대로 놔두지 그러셨어요.”
“그렇게 매정하게 굴면 속상하지, 사람이 기껏 찾아와 줬는데.”
“꼭 제가 선밸 부른 것처럼 얘기하시네요.” “아니야?” “아닙니다.”
크로우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내린 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