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는 못 살아. 잘해야 스무 살?”
그렇게 말하자 늘 그림같이 웃고 있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반짝이는 금발에 그늘이 지고 상냥한 눈웃음도 멎었다. 늘 휘장처럼 드리우고 있던 해사한 웃음을 잃은 로네의 얼굴은 석고상처럼 파르라니 생기가 없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회복할 시간을 줄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 로네 펠트너. 네가 차기 리더감인 것도, 그래서 학교의 모든 아이들과 잘 지내려는 것도 알겠어. 하지만 나는 거름회수팀이 될 생각도 없고, 설령 되더라도 열심히 일할 생각도 없어. 이래서야 금방 잘리고 끝이겠지.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찾으러 다닐 필요 없다고.”
쏘아붙이고 뒤돌아 떠나는 찰나, 무언가가 옷자락을 잡아당겨 딜마는 그만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찔, 균형을 완전히 잃었다가 곧 묘하게 폭신한 것 위로 떨어지는 감각. 딜마를 품에 받아 안은 로네가 얼굴을 닿을 듯 내려다보며 천진하게 웃었다.
“역시, 딜마. 내 파트너가 되어 줄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나는 회수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뭣보다, 머지않아 죽을 거라고. 그런데 파트너라니. 동정인가? 오만인가? 어느 쪽이든 받아들일 수 없으니 화가 솟구치는 것이 먼저였다. 딜마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해 못 했어? 나는 시한부야. 스물도 못 돼서 죽을 거야. 지위든 권력이든 가지려 애를 써도 아무 의미 없다고!”
“하지만 알잖아, 딜마? 여기 있는 누구도 네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거. 늘 그런 눈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잖아.”
차마 부인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자 로네는 샐쭉 웃었다.
“그러니까 함께 일하자. 어차피 누구라도 언젠가는 죽을 거, 함께 최고의 마지막을 맞으면 되잖아? 있지, 딜마……. 나도 남한테 쉽게 말 못할 비밀이 하나 있거든. 네가 비밀을 알려줬으니까 나도 하나를 알려줄게. 어때, 괜찮지?”
아는 누군가가 시한부라는 사실은 그저 알기 부담스러울 뿐이다. 결코 ‘비밀을 알려주었다’고 표현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로네는 그 단어를 또릿하게 발음하며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귓가에 속닥거렸다. 귀에 소곤소곤 닿는 숨이 간지러워 딜마는 손끝이며 발끝을 움찔 움츠렸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나지막했다.
있잖아, 딜마. 나는, 우리 집은 말이야, 사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