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실에서 혼자 다섯 배역을 하던 남자를 목격한 지도 벌써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히비키 와타루는 연극부의 부장이 되었고, 이츠키 슈는 그의 친구가 되었다. 친우라고 하는 게 좋을까? 적어도 동아리의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할 만큼 친해진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여전히, 연극부의 연기는 슈의 성에 차지 않는다.
“호쿠토 군, 집중하세요. 여기가 가장 중요한 장면입니다! 카이가 수줍은 소년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이에요!”
“하지만 집중이 될 턱이 없잖은가. 눈의 여왕도 부장, 게르다도 부장……. 결국 부원은 우리 둘만 남았는데, 이대로 괜찮은 건가?”
“아아, 보통 사람 둘이서 연극을 하는 건 어렵겠죠. 하지만 보통 사람이 아니라 이 히비키 와타루가 부장인걸요? 일인극을 해도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합니다!”
“……가끔 생각했지만, 당신 혼자 충분하다면 나까지 연극부에 필요한지 모르겠군. 차라리 나도 퇴부하는 게 나은 게 아닌가?”
“그건 안 되죠, 안 돼요. 호쿠토 군이 이 연극부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데!”
“부장……. 매일 햇병아리 취급하더니 그래도 나를 배우로 인정해주는 건가?”
“그럴 리가 있나요! 호쿠토 군은 분명 뛰어나지만 저에 비하면 배우라고 할 수도 없죠. 그래도 제 연습을 봐줄 유일한 관객이니까요!”
“당장 퇴부하러 갈 거다. 말리지 마.”
방을 나가려는 호쿠토와 말리려는 와타루로 연극부실은 한참 난리가 났다. 물론 히비키 와타루는 본인의 말마따나 보통 사람 이상의 재주가 있었으므로 어렵잖게 호쿠토를 잡아 세울 수 있었다.
“아아, 호쿠토 군. 우리의 애정이 농담 한마디에 의심받을 정도였다니 슬픕니다! ― 우리라고 표현하지 마. 라고 호쿠토가 차갑게 덧붙였다. ― 당신을 위한 진심을 알아주세요. 호쿠토 군이 외로울까 봐 이렇게 고문 선생님을 모셔왔답니다~?”
“누가 고문이라는 거냐, 누가.”
“하지만, 슈. 당신이 의상도 만들고, 대본도 만들고, 이렇게 와서 연기지도까지 해주다니……. 그렇네요. 이건 고문이라기보다는 연극부 부장에 가깝네요! Amazing, 당신이 히비키 와타루입니다!”
이 텐션의 와타루에게 일일이 반응할수록 더 말려들 뿐이다. 슈는 대답 대신 호쿠토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고생이 많겠군.”
호쿠토는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올랐는지 감격한 표정이었다.
“변태가며……, 아니, 히비키 부장의 친구라는 분이 맞는 말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두 배로 비난받는 게 아닌가 걱정했네요.”
“흥,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지. 안일하게 좋은 말만 해주려고 온 건 아니다.”
“그럼요, 그럼요. 슈는 첫 만남에서 무려 제 연기도 혹평했답니다? 긴장 바~짝 하는 게 좋을 거예요, 호쿠토 군?”
“예술에 이유 없는 비평은 하지 않는다. 그때 비평했던 건 와타루 네 연기가 내 평가선 아래였기 때문이야.”
한 치 흔들림 없이 대꾸하는 슈를 보며 호쿠토가 몸을 조금 움츠렸다.
“너무 걱정 마, 히비키 부장. 나도 연극부원인 이상 비평에서 도망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정도라니, 조금 겁이 나는군…….”
“긴장했나요, 호쿠토 군! 어깨를 움츠리고 시선이 내려갔네요, 가엾은 새끼오리처럼! 안 되죠, 모처럼 당신에게 꼭 맞는 배역을 준비했는데요. 제 애정을 매정하게 거부하는 당신처럼, 심장에 얼음 조각이 박힌 카이인데요! 그런데 그렇게 위축되어 있어서야 슬프죠. 그러면 비평보다 먼저, 일단 이쪽에서 시범을 보여드리죠.”
일인극의 주인공마냥 속사포처럼 말을 퍼부은 와타루가 슈를 돌아보며 윙크했다. 무슨 의도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로 멀거니 마주보자 와타루가 슈의 손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호쿠토 군은 발음도 대사도 정확하지만, 연기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어요. 제가 슈와 함께 시범을 보여주죠. 자, 보세요. 눈의 여왕의 첫 번째 키스는.”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하얀 얼굴이 눈앞에 다가왔다.
“추위를 잊게 합니다.”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남았다. 화를 내야 할까? 슈는 앞을 흘끗 쳐다보았다. 호쿠토는 여전히 진지하게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입술이 보이지 않는 각도니 그저 흉내인 척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보세요, 이게 현실과 유리된 카이의 놀란 얼굴이랍니다. 그리고 두 번째 키스는.”
슈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입가를 간지럽히는 감촉에 가볍게 응하여 입을 벌리다, 와타루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찌릿 노려보자 와타루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친지와 가족을 잊게 하는 키스입니다. 그렇게 카이는 두 번의 키스를 받고 눈의 여왕에게 홀려서 그녀를 따라가는 거죠.”
-칫. 작게 혀를 차고 슈는 다시 호쿠토의 안색을 살폈다. 이상한 낌새를 맡지 못했는지 후배는 그저 순수하게 감탄하는 기색이었다.
“확실히 진실한 감정이 느껴지네요. 시범 감사합니다.”
차마 뭐라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슈는 그저 고개를 가볍게 까닥인 후 와타루의 땋은 머리를 잡아당겼다.
“아앗, 그렇게 만지면 기분이 이상해지니까 섬세하게 다뤄주세요?”
“머리카락이잖아, 머리카락. 촉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하지 마라. 저 녀석이 눈치가 없어서 다행이지, 카게히라 앞에서는 하지 마.”
“어라. 아직도 게르다를 잊지 못한 건가요, 카이 군?”
와타루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세 번째 키스를 해버릴 거예요. 긴 꿈에 빠지는 키스예요.”
“마음대로 해.”
무심코, 그렇게 대답했다. 입술에 아까의 감촉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