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빌

꿈은 그만 꾸렴, 메리. 책도 적당히 읽고 공상도 정도껏 하고 엄마아빠의 일을 도우렴. 밭을 일구고 요리를 해. 착한 아이는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거야. 그래야 신께서도 어여삐 보시지.

메리는, 어쩌면 그래서 자신이 신님께 벌을 받았을런지도 모른다 싶었다. 꿈에서 깨는 꿈을 꾸었다. 깨고 깨어도 일어날 수 없었다. 보아도 보아도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공기처럼 기포처럼 꿈을 부유하며 온갖 것을 보고만 다녔다. 하지만 꿈의 어떤 층에도 그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 이후로는.

엄마, 전 상을 받은 것만 같아요. 다시 만나다니 꿈만 같아!

그가 죽어야만 할 때마다 소녀의 손길이 스친다. 앙증맞은 금장 지팡이에서 몽환이 피어난다. 다친 곳을 지울 거야. 빌헬름이 죽게는 두지 않을 거야! 깃펜 끝에서 생명이 태어난다. 소녀는 꿈마다 부단히도 움직인다. 그리고 빌헬름은 내장을 안고 괴로워한다. 어째서 죽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왜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소녀가 닿지 않는 손을 뻗어 울면서 웃는다.

닿을 수 없는 당신은 그저 내 꿈일 뿐이거나, 아니면 내가 당신의 꿈이거나. 꿈속에서라도 당신이 죽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아. 신님, 부디 제가 계속 빌헬름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계속계속 벌을 주세요.

그리하여 이 세계의 신은 영구히 자비롭고 소녀는 오늘도 단잠에 든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