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스에 빌헬름 자살하는 단편 낼까 했는데 안ㄴ냈다 내가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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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가까워졌다. 이럴 때 사람이 하는 생각은 보통 하나다. 나는 언제까지고 젊을 줄 알았는데. 빌헬름 쿠르트도 누구나와 같은 그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정말로, 언제까지고 젊을 줄은 몰랐는데.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세월의 잣대는 인생이 아닌 전쟁이 된다. 이번 전장에서의 교착 상태는 칠 개월 째였다. 어서 이 전투가 끝나기를 바라며 그저 싸우고 전진하고 감내하다가 눈을 뜨고 보면 코 베인 듯이 해가 바뀌어 있었다.
빌헬름 쿠르트는 언젠가 야영을 하던 밤에 상관인 장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스무 살이 채 되기 전에 입대했다고 한다. 장군의 희끗희끗한 머리와 굵게 주름진 이마를 바라보며 빌헬름 쿠르트는 스무 살의 그를 상상해 보려고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스무 살의 빌헬름 쿠르트를 생각해 본다. 이쪽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언제든 거울을 보면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자신이 있었다. 이제 마냥 어리다고 하기는 어려운 나이다. 그래도 빌헬름 쿠르트는 여전히 젊었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빌헬름 쿠르트는 귀환한 브론하이드 왕성에서 맞이했다. 전장에서는 생일이나 날짜마저도 잊고 지냈기에 새삼스러운 기분이었다. 그는 때맞추어 왕실에서 열린 연회에 불려나갔다. 빛나는 천과 휘장을 몸에 걸친 왕족들과 대신들은 대리석으로 바닥을 댄 연회장 안에서 그림처럼 웃었다.
그들은 긴 시간동안 사악한 제국의 마수에 맞선 빌헬름의 용맹함과 노고를 치하하며 향기로운 음료를 잔에 붓고 포도주에 재운 고기와 우유를 굳힌 디저트를 융숭히 대접했다. 녹색 주단으로 지은 드레스를 입은 부인이 소령은 군인답지 않게 얼굴도 잘생겼다며 환담을 한다. 어색했다. 빌헬름 쿠르트는 이 자리가 어색했다.
생이란 원래 이런 자잘한 화려함을 누리며 사는 것이었던가? 그는 사지에서 죽지 않는 자신의 몸을 던지는 대가로 남의 목숨을 구하며 살았다. 그러고도 구하지 못한 목숨들이 있었다. 새 소리를 좋아했던 카엘과, 이번 전투를 마지막으로 영영 귀향하려고 했던 세드릭. 그 외에 한 번에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이름들.
이런 만찬을 부러워했을 그 많은 병사들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며 빌헬름이 은제 나이프로 송아지 스테이크를 썰자 붉은 피가 접시 위에 배어나왔다. 마치 전장에 흩뿌린 빌헬름 자신의 피였다. 또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들의 피였다. 잘게 잘라 입안에 넣은 살점은 여지없이 달콤했고 빌헬름은 비참해졌다.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파티에서 빌헬름은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예전에 야영을 함께했던 그 장군이었다. 먼저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와 감사하다는 인사가 한 차례 오갔다. 나름대로 오랫동안 사지를 함께했던 사이인지라 빌헬름의 안색이 피로한 것을 눈치챘는지 장군은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빌헬름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장군님께서, 예전 야영 중 밤에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전쟁의 잔혹함도, 지금은 영문 모를 인생의 다른 일들도 나이를 충분히 먹으면 전부 익숙해질 거라고.”
“그래. 그랬네. 기억이 나.”
“그러면 제가 나이를 충분히 먹는 것은, 언제쯤입니까?”
그는 대답 대신에 내려놓았던 잔을 들어 포도주를 한 모금 홀짝였다. 다시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한숨을 한 번 내쉰 다음에야 장군은 빌헬름 쿠르트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글쎄, 쿠르트. 나도 귀경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젊을 줄은 몰랐다네. 실은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도 나에게는 놀랍다네. 귀경은 지금도 이렇게 젊으니까 말이지.”
빌헬름 쿠르트는 장군이 비릿하게 웃으며 핏빛의 술을 들이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정말로 죽어 볼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