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즈브라우 외곽 해안가 출신의 젊은 빌헬름 쿠르트 청년이 브론하이드 성에서 환대받는 소령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참전하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군인치고는 드물게 마음씨가 여린 이 청년은 도륙과 학살에 앞장서는 데는 쉬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대신 아군의 방패막이가 되어야 하는 곳, 가장 위험한 곳에 몸을 던졌다. 실날같은 희망을 등에 이고 그는 오늘도 전선에 앞장서 뛰어든다. 이번에는, 죽을 수 있을까.
빌헬름 쿠르트가 쿠르트 소령이 되는 과정의 기억은 바닥에 흥건한 피와 꿈틀거리는 내장과 떨어져나간 살점으로 점철되어 있다. 빌헬름 쿠르트의 목을 쥐고 칼을 꽂아넣던 병사가 비명을 지른다. 찌른 것은 빌헬름 쿠르트의 복부인데 자신의 복부에서 살점이 떨어져나간다. 그 다음 병사가 내장을 주워담는 빌헬름 쿠르트를 보며 소리를 지른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빌헬름 쿠르트는 소리지르는 병사의 입을 막고, 병사는 내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바닥에 무너져내린다. 전장에 흥건한 비명과 생명을 그러모아 그렇게 쿠르트 소령이 완성되었다.
“그러니까 저는, 전하께서도 목숨만 부지한다면 무사하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빌헬름 쿠르트는 왕국의 태자인 그룬왈드 론즈브라우의, 그룬왈드 론즈브라우였던, 몸뚱이의 팔이 잘린 절단면과 가면을 씌웠음에도 턱 부분이 비어 있는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구해낸 것입니까? 아니면 당신에게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것입니까?”
턱이 없는 생물은 말을 하지 못한다. 빛 없이 어두운 방에는 그르릉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때 당신을 구해낸 것도,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죄송합니다. 그저 저는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만족이었다. 태자를 구해낸 것도, 지금 이렇게 와서 좋을 대로 말을 지껄이는 것도. 아마 답변은 들을 수 없으리라. 빌헬름 쿠르트는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서 돌아섰다. 그때 등 뒤에서 탁탁, 하고 기이한 기계음이 났다. 어둠 속에 그룬왈드 론즈브라우에게 연결된 콘솔이 하얗게 빛을 냈다. 틱틱거리는 소리와 함께 몇 글자가 띄워졌다.
[그래서 그대는 죽지 못하는 것인가.]
빌헬름 쿠르트는 태자 본인의 상태를 물었다. 그런데 태자는 빌헬름 쿠르트에 대해 말했다. 순간 잘못 읽었나 싶었다.
[그대도 죽음을 갈망하는 게지. 걱정할 것 없다. 그대는 역시 틀림없는 나의 충신이다.]
왜인지도 모르고 눈물이 쏟아졌다.
[다음 궁정회의에, 나를 알현하라.]
그 다음 문장이 뜨는 시간은 찰나로 짧았으나 또한 영원처럼 길었다. 영원한 소망이 콘솔 위에 띄운 글자의 형태로 의태하여 나타났다.
[그대가 소망하는 죽음을 주지.]
빌헬름 쿠르트는 그룬왈드 론즈브라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그에게 충성을 바치고 사지에서 구해낸 데에는 틀림없이 그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