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젠님 리퀘 부활자크아인

가끔은 이 세상에 없는 세상의 기억이 떠오른다. 별의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추억도 지식도 없고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끼리 모여서 모두 하나만은 동의했었다. 이곳은 어디도 아니야. 사막을 걷다 보면 곧 눈보라가 치고 설원을 걷다 보면 곧 늪에 빠졌다. 이런 세상은 어느 곳일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기억이 없는 건, 원래 우리의 세상이 아닌 곳에 있어서가 아닐까. 아마 우리는 원래 있던 세상에 돌아가면 기억을 되찾게 되는 거야. 아니, 기억을 되찾으면 원래 있던 세계에 돌아가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그 말대로 기억을 찾아 현세에 돌아온 지금은 그곳의 기억이 나지 않아야 맞는 게 아닌가.

 

이렇게 별이 밝은 밤이면 아이자크는 자신이 그 세상의 단 하나도 잊지 않았음을 알았다. 몸이 딱딱한 인형이 있었다. 가끔 안아달라고 떼를 써서, 한숨을 쉬고 팔을 향하면 품안에 쏙 들어오던 작은 인형이 있었다. 인형뿐만이 아니었다. 판데모니움에서 왔다는 엔지니어부터 수백 년 전에 죽었다는 사람, 어디서 왔을지 모를 동물 귀 달린 사람들도 있었다. 여자애 중에는 좀 더 귀염성이 없는 아이도 있었다. 고양이 귀를 단 여자아이였다.

아이자크는 제 별명이 군견이라는 걸 잘 알았다. 인형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둘은 개와 고양이라서 안 좋은 거지. 여자애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어린애 주제에 사명을 다하겠다고 따박따박 나서는 모양새나, 재주도 능력도 없으면서 싸우겠다고 몸을 던지는 것, 도무지 세상 풍파에 맞서 싸우지는 못할 것 같은 가느란 팔다리, 짧은 치마에 하얗게 드러낸 맨다리, 를 하고서 속알 없이 웃는 것. 아이자크는 자주 잔소리를 하고 아인은 맞서서 투닥거렸다. 마음이 쓰이지 않는 구석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언제까지고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모두 지나간 이야기다. 현세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자마자 아이자크는 망설임 없이 이곳에 돌아왔으므로.

고양이 여자애 역시 하도 사명 사명거리는 녀석이었으니 아마 기억을 찾자마자 그 좋다는 사명을 지키러 있을 곳에 돌아갔겠지. 애초에 각자의 길로 되돌아가기 위해 잠시 머문 곳이었다. 더는 미련 둘 것 없는데, 그런데 왜 자꾸.

 

별의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별과 함께 기억을 헤아리다 용병단의 막사로 돌아왔을 때, 보초를 서던 동료가 아이자크를 보고는 반색하며 다가왔다. 방문자가 있어. 누군데? 말하지 말라던데, 일단 보면 안다고. 무슨 소리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들였다는 건가? 도대체가 보안 의식이 있는 거야?

“저예요.”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번쩍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상대는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머리 위로 세모난 귀가 쫑긋거렸다.

“저, 기억하세요…?”

소녀는 변한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심지 굳은 파란 눈. 허리를 덮어 내려오는 긴 보라색 머리카락, 용병단 한가운데에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배짱 하며, 도무지 세상 풍파에 맞서 싸우지 못할 것 같이 가느란 팔다리, 짧은 치마에 하얗게 드러난 맨다리, 를 하고서 속알 없이 웃는 것. 아마 아이자크 자신도 크게 변하지는 못한 듯하다. 단 한 곳도 눈을 뗄 수 있는 구석이 없었다.

어쩐지 그날은 별이 유난히도 밝았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