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키님 리퀘 리니씨씨타이

C.C.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잘생긴 남자들을 좋아했다.

C.C.로 말하자면 연구소에서 가장 젊은 엔지니어였고, 또한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엔지니어였다. 허공을 보며 넋을 빼놓고 있다가 복잡한 도면을 한가득 그려 내는 모습을 보면 그 누구라도 혀를 내두르다가 끌끌 차고는 했다. 혀를 내두르는 이유는 그 압도적인 재능 때문이었고, 혀를 차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제대로 인지를 못 하는 까닭이었다.

예전에 어느 엔지니어가 그녀의 재능과 그늘 없이 밝은 분위기에 첫눈에 반해 은근히 들이댄 적이 있었다. 호감을 가진 티가 나도 너무 나서, 연구소의 모두가 말은 안 해도 아련하게 따뜻한 눈빛으로 그 남자를 격려하고는 했다. 도무지 연구밖에 모르고 남자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저 아가씨를 누가 데려갈까, 요 어린 아가씨는 언제쯤에야 철이 들고 사랑이라는 걸 알까 다들 조금씩 걱정이었던 것이다.

하루이틀 계속 말을 붙이던 남자가 마침내 C.C.에게 이상형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연구소에는 이상할 정도로 침묵이 감돌았다. 엘런은 설계에 열중하는 척했지만 도면 대신 허공을 보고 있었고 케인은 손바닥에 땀을 쥐다가 자기 침 삼키는 소리에 깜짝 놀라 허리를 곧추세웠다. 정작 두 사람은 온 연구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줄도 모르고 잘도 떠들고 있었다.

“C.C.는 남자를 볼 때 어딜 보나요? 성격이라거나… 재능? 아니면 역시 외모?”

“으음~ 글쎄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에이.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냥 말해 봐요. 다 이해해요.”

그녀는 해맑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과의 케미요!”

 

한낱 가벼운 호감으로 뚫어내기에 그녀의 배리어는 너무 강했고 며칠 후 그녀가 대답한 의미를 이해한 남자 엔지니어는 자재창고에서 술이 떡이 되어 발견되었다. 이 엔지니어를 본인 요청에 따라 다른 연구소로 이적시켜 준 것이 바로 리니어스 상급기사였다. 그래서 리니어스에게 현재 연구소의 상황은 퍽 흥미로우면서도 난처했다. 설마 그 고고한 엔지니어가 하필 그 알게모르게 악명높은 아가씨에게 관심을 가지리라고 어느 누가 예상했을까.

둘 중 어느 누구도 놓치기가 아까운 인재였기에 리니어스는 이번엔 꽤 신중을 기해 상황을 지켜보았다. 기계에서 처음 또래의 여자로 방향을 바꾼 타이렐의 관심은 의외로 뭉근하고 집요하여 쉬이 식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C.C.는…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상대에게 은근히 호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인 찬스마다 천연덕스러운 말로 완전히 화제를 돌려 타이렐을 좌절시켜 버렸다. 이번 목요일에는 연구소가 쉬죠? 아, 네! 그랬었죠! 신작 보러 가야겠다! C.C.는, 무슨 종류의 작품을 좋아합니까? 아이 참.. 그게…. 타이렐도 이런 데 관심이 있나요? 여기요.

그리고 가장 슬픈 점은 타이렐이 좌절할지언정 포기하지는 못한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예전의 젊은이처럼 포기했다면 편했을 것을. 두 사람의 모습을 계속 유의해 지켜보며 리니어스는 타이렐을 동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깨닫게 된 점이, C.C.가 남들보다 자신과 타이렐에게 유독 밝게 인사한다는 사실이었다.

타이렐과 리니어스 두 남자를 대할 때마다 C.C.의 눈은 빛나고, 뺨에는 홍조가 돌았다. 며칠간 리니어스는 머리가 복잡해 잠을 설쳤다. 이거 좀 복잡해지는 거 아닌가 가끔 그 눈을 떠 버릴 정도로 골똘히 생각했다. 그대로 다음 사실을 깨닫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C.C.는 리니어스와 타이렐을 엮고 있었다.

 

이제 리니어스는 다른 의미로 잠을 설쳤다. 침대에 누우면 C.C.의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리는 눈이 떠올라 오한이 들고 기분이 착잡했다. 아니야. 이게 아닌데.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드디어 상급기사는 결단을 내렸다. 윗사람으로서 젊은이에게 직접 일러줘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다. C.C.를 따로 불러서,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서 직접 차근차근 얘기를 해보면 아무리 둔한 아가씨라도 상황에 대해 좀 감을 잡고 대처를 하게 되지 않을까. 사실, 무엇보다도 계속 C.C.에게 망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 꺼림칙했다.

“이리 와 봐아, C.C.”

“네, 상급기사님.”

“내가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어어. 혹시 다음 휴무 때 시간 있어어?”

“앗, 아앗… 네, 상급기사님! 얼마든지요!”

지금 이 아가씨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리니어스 자신에 대한 호감에서 기인하는 거라면 나쁘지 않을 텐데. 리니어스는 난처하게 웃었다. 아마 연구나 개발에 대해 논의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C.C.가 리니어스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만은 확실했으니까. 아쉬운 기분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C.C. 저번에 제가 말했던 공연 말입니다. 이번 주 휴무에, 시간 괜찮습니까?”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며, 흘끔거리는 시선 하며, 모로 보나 리니어스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새파랗게 어린 엔지니어에게 경계를 당하고 있자니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다. 나는 그런 게 아니야아. 바로 타이렐 너와 C.C.를 이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던 거라고.

“아, 저기 미안해요. 타이렐. 그때는 이미 선약이 잡혀서…”

그리고 하필 대답을 하면서 C.C.는 눈앞의 리니어스를 흘끗 쳐다보았다.

“설마 지금 두 사람…”

“네. 다음 정기 휴무는, 리니어스 상급기사님과 보내기로 했어요!”

기이하게도, 여자는 이 순간 뺨을 수줍게 붉히고 눈을 접어 웃었기에 영락없이 다른 종류의 자랑 같아 보였다.

“네? 뭐라고 했습니까, C.C.?”

리니어스는 언제나 나른하니 고고하던 엔지니어가 입을 뻐끔거리는 귀중한 장면을 아주 가까이서 구경하게 되었다. 경악에 찬 타이렐의 눈이 C.C.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뭐가 잘못됐느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에게서 아무런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리니어스를 향했다. 이런이런, 수습하자아.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티를 내야지.

그렇지만 리니어스는 아무 말도 없이 타이렐을 보며 싱글싱글 웃고만 있었다. 이 상황이 이상하게도 즐거웠던 것이다.

일 초, 이 초, 삼 초. 시간이 지날수록 이 고고한 청년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더니, 마침내 눈앞의 여자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C.C., 당신은 우수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용서할 수 없습니다!”

타이렐은 씩씩거리며 방을 박차고 나갔다. 쾅 하고 문 닫는 소리가 연구소 전체에 울릴 지경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C.C.는 울상이 되어 리니어스에게 매달렸다.

“으으, 상급기사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오…”

“걱정 마아, C.C. 타이렐은 금방 제 풀에 꺾여서 돌아올 거야아.”

손을 들어 머리를 슥슥 쓰다듬자 C.C.는 뺨을 붉히며 얼굴을 숙였다. 연애세포라고는 1g도 살아있지 않은 아가씨, 여느 남자에게 호감을 가지더라도, 저 남자 괜찮다며 남과 엮을 생각만 하고 본인의 감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둔한 천재 아가씨. 알고 보면 꽤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아가씨. 리니어스에게 지금의 상황은 난처하면서도 괜찮은 기분이어서, 그는 타이렐이 계속 오해하게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