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그레이브는 업무 중 집중이 필요할 때면 종종 안경을 썼다. 뛰어나게 조정되어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은 때로는 오히려 독이다. 해상도를 낮추어 자극의 양을 줄이고 집중을 돕는 안경. 집무실 뒷편에서 레드그레이브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펜대를 빙글빙글 돌리던 그라이바흐가 말했다.
“그거, 꼭 써야해?”
“그런 말 할 시간 있으면 일이나 좀 도와주시겠어요, 엔지니어 그라이바흐?”
말이 들린 쪽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머리카락 한쪽을 귀 뒤로 넘기며 일에 집중하려던 레드그레이브는, 곧 입술을 삐죽이더니 홱 뒤를 돌았다.
“내가 안경 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니, 그런 문제가 아냐. 너는 항상 걱정될 정도로 넘치게 아름답지만.”
“그럼 왜?”
“왜일 것 같아?”
그라이바흐가 턱을 살짝 괴고 웃다가 레드그레이브의 쪽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안 될걸?”
레드그레이브가 눈을 세모나게 뜨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그라이바흐의 얼굴 위로 손을 올렸다. 레드그레이브는 그라이바흐에게 키스했다. 꽤 시간이 지나자 안경 위로 온통 하얗게 김이 서렸다. 레드그레이브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그러니까 방해될 거라니까.”
“알았어.”
그녀는 잠시 그에게서 떨어져서 안경을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대신 이따가 당신이 일해줘야 해요.”
“얼마든지, 귀여운 레드그레이브.”
“그렇게 말하는 건 당신뿐인데.”
그라이바흐는 킥킥 웃으며 레드그레이브의 허리를 한 팔에 안고 장애물이 없어진 눈가를 매만졌다. 그렇게 탁상 위 안경의 김이 전부 지워지고 또 남을 때까지 달큰한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