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바람

왕국 구석 마을에 조금 외로운 남자가 살았다. 이름은 빌헬름 쿠르트라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아이였을 때부터 이마도 반듯하고 콧대도 쭉 뻗은 게 아주 잘생겼다. 그런데 아이가 조금 이상하다. 부모가 일이 바빠 굶겨도 밥달라고 울지를 않는다. 또래 애들이 보여도 놀자고 달려들지를 않는다. 그집 애는 왜 그래요? 아니 우리 애가 왜요. 우리 애는 아무 문제 없어요.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부모는 아이를 마을 진료사에게 데려갔다. 물론 진료사라고는 하나 이런 구석 마을까지 진짜 의사를 둘만한 나라는 되지 못해, 그저 경험 많은 노인이다. 주름진 손이 아이의 흰 이마를 쓰다듬는다. 번듯하게 생기면 뭘 하나, 이 애는 죽을 애요. 그 애의 눈이 어딜 보던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고 있지 않지요. 하늘이에요. 원래 신께서는 금방 데려갈 아이는 꼭 그렇게도 예쁘게 빚으신답니다. 이런 아이는 흔하진 않지만 아주 드문 것도 아니지요.

말은 빠르게 퍼지고 아이는 그 말이 옳다구나 확인받을 만큼 눈빛이 비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사람도 아이를 제대로 보지 않고 아이도 사람을 보지 않았다. 남들이 밭을 갈 때 아이는 책을 읽고. 그러다보니 날 때부터 그랬던 건지 책을 읽어 그런 건지 좀 똑똑해지고. 심장 어딘가가 빈 채로 똑똑하게 자란 아이는 소년이 되어 도시로 유학을 갔다. 부모는 소년에게 모든 것을 해주고 싶다. 그런데, 도시에 와 보니 눈 어딘가 공허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 배우는 자들은 그것을 사상이라고도 부르고 시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사람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자란 아이만큼 공허한 사람은 역시 없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에게 장교가 속삭였다. 너는 꽤나 똑똑한데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며. 너 같은 사람이 딱 필요한 곳이 있지.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곳, 소년은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적응하기는 힘들었다. 연병장을 돌며 운동을 하고, 토악질을 하고, 청년은 울었다. 그러나 아이에겐 두 번째 언령이 남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네가 필요해. 청년은 죽음과 맞닿아서 비로소 삶을 산다. 적이 죽고 동료들이 죽을 때마다 청년은 웃고 울었다. 죽고 싶지 않아 울었다.

그리고 긴 긴 세월이 지나서, 죽을 수 없게 되었음을 실감했을 때, 청년은 울었다. 가슴의 빈 곳이 청년이 울 때마다 그리고 여름 남풍 겨울 북풍 불 때마다 허물어지더니 마침내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언제야 죽을 수 있을까.

어머니, 어머니가 맞았어요. 그네 말이 맞아요. 나는 이제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아요.

왜냐면, 하지만 사는 것은요. 지금이 달랐을까요. 만약에 제가 어려서 사는 법을 배웠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