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그우닝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 곤란하네.”

“잠시만 시간을 내 주시면 됩니다. 아니면, 대답하지 못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당당하게 눈을 들었지만 뒷짐 진 손가락 끝은 양복 끝자락을 더듬어 잡고 있었다. 위험한 도박이었다. 너무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라면 자칫 상층부의 표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고, 더 물러설 곳은 없었고, 그녀의 태도에서 조금의 단서라도 얻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글쎄… 그건 내가 물어야겠는걸. 이 세계의 비밀이 알고 싶다고? 굳이 알려주지 못할 건 아니야.”

살풋 미소를 짓고 레드그레이브는 일어나 차에서 내렸다. 화색이 도는 걸 미처 숨기기도 전에, 질릴 듯이 선명한 눈동자가 브라우닝을 빤히도 응시하고 있었다.

“브라우닝이라고 했나… 자네는 세계의 비밀이 뭐라고 생각하지?”

“그것을 알기 위해 제가 여기에 온 겁니다. 자살로 위장한 타살 사건의 진상을 알면…”

“자네는 그 피살자가 누구였는지 아나?”

“예술가라고만 기록되고 자세한 정보는 극비에 부쳐져 있지만 있지만… 세이리어스 그라이바흐. 당신과 함께 세계의 발전을 담당했던 세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아닙니까?”

가진 패를 내보이고 브라우닝은 가만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레드그레이브는 틀린 대답을 부정하는 스승마냥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야… 어디 보자. 탐정 일이라면 나도 조금 할 줄 안다네. 자네의 다려놓았지만 해진 소매. 이런 곳에 입고나올만한 옷은 아니야. 단벌로 어딘가에 머물고 있군? 급한 사정이 있어서라 쳐도 얼굴은 가칠하고 수염은 머리도 정돈되지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생활에 길들여져 있어. 평소에 관리하는 타입은 아니군.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은, 없지.”

“이런 식으로 화제를 돌리시려는 거라면…”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죽은 그라이바흐는 내 가족이고, 친우고, 그 무엇보다도 내 연인이었다는 게지.”

순간 브라우닝은 귀를 의심했다. 당황해 레드그레이브의 표정을 보려 했지만 여자는 브라우닝이 그럴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이 해사하게도 웃었다.

“그러니까, 말해준다 한들 자네가 알겠나? 그 감정들을 이해하고 추리할 수 있겠어? 그림자가 길어지면 일몰이 기다려지는 것. 누군가의 숨소리가 귀에 익은 것. 나보다 열등한 존재를 질투하게 되는 것. 한 쌍 눈동자의 빛이 천 가지의 정보보다 크게 닿아오는 것. 보고 들어도 궁금해서 더 알고자 하는 것. 그래서 더 가까이 있고자 하는 것, 그리고 바로 귓가에 속삭이는 것을, 말해주면 자네는 알겠어?”

어느새 여자의 얼굴이 부쩍 가까이 있었다.

“아니면, 알고 싶어? 세계의 비밀이, 정말은 어떤 것인지.”

웃음 짓는 숨이 뺨에 살짝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