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키오르라는 소년의 방은 얼핏 보면 온갖 잡동사니로 난잡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연구에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결벽에 가까운 무색의 공간에 파르스름한 그림자만이 비쳤다. 소년의 고독은 스스로 선택한 바였다. 동정을 구한 적도 없었다. 침입을 허락한 적도 없었다. 물론 허락하고, 하지 않고는 그의 ‘형제’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멜키오르는 문득 종이 위로 비치는 붉은빛을 보았다. 창문 너머로 해가 떨어져간다. 쫓기는 사람처럼 자명종을 확인하며 소년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째깍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무겁게 귀를 눌렀다. 초침이 몸 안으로 흘러들 것 같았다. 일곱 시가 가까워지면 허벅다리가 떨렸다. 배가 뒤틀렸다. 다시 펜을 잡고 종이 위에 손을 올렸지만 의미 없이 공중에 떠 있을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멜키오르는 종이 위로 고개를 묻었다. 그림자가 떨렸다.
마침내 차임벨이 울렸을 때, 멜키오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스스로 당황했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나는 그라이바흐를 기다린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아프고, 그렇게 부끄럽고… 그렇다면 문을 열지 않으면 되었다. 딸깍, 전자음과 함께 보안 장치가 해제되었다. 지금 문을 닫아도 어차피 내일 낮에 다시 보아야 하니까. 제 욕구를 인정하기도 겁을 내는 여린 소년이 자기정당화를 하는 동안 문이 열렸다. 멜키오르는 고개를 들어 형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오만하고, 언제나처럼 우아했으며, 언제나처럼 반가웠다.
“들어와, 그라이바흐.”
홀린 듯이 침대 위로 다리를 올려놓다가 어제 시달린 허벅지에 통증이 엄습했다. 그제서야 덜컥 겁이 났다.
“저기, 그라이바흐, 오늘은 그냥 지나가면 안될까…?”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형제는 이미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할 새도 막을 새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긴장 풀어, 멜키오르. 우리는 형제잖아.”
그림자 진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천사처럼 아름답고 악마처럼 진득했다.
“그럼 시작하자, 멜키오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그라이바흐가 그의 등을 떠밀어 상체를 침대 위에 비뚜루 뉘였다. 굳은 근육이 억지로 당겨 신음이 흘렀다. 머리카락 몇 움큼이 시트 위로 흐트러졌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방 안에서 두 소년의 그림자가 길게 떨어졌다. 눈을 반쯤 뜬 그라이바흐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침대 시트가 삐걱거렸다.
“아, 윽, 그라이바흐, 그, 그만…”
“좀 참아, 멜키오르… 나도 나름대로 힘들다고…”
“하지만, 그라이바흐… 거긴 너무, 너무 아파…”
“그거야 항상 앉아만 있으니까 여기 근육이 뭉쳐서 그렇지.”
그라이바흐가 힘껏 잡아당기던 어깻죽지를 팡팡 두들겼다.
“만날 그렇게 운동도 안하고! 책상에 앉아서 날밤만 새우니까…! 키가 안 크는 거라고! 말했지!”
“으윽, 나도 안 크고 싶어서 안 크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좀 참아! 마사지라도 해서! 몸을 좀 풀어줘야지! 좀 더 크든 말든 할 거 아니야!”
사정없이 근육을 힘주어 누르는 손길에 멜키오르는 반쯤 흐느끼고 있었다. 정말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알면서도 자신은 왜 또 그라이바흐를 방에 들여놓았을까. 아프지만 시원했다. 정말이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리고 알면서도 읽고 있는 님들도… 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