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한뭉안에 인형이랑 유리카 다 먹으면 유레블린 쓴다

세상은 소음으로 가득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옷자락은 젖어 바닥에 끌렸다. 비 맞은 어깨를 떨면 그만큼 더 냉기가 스치는 것이 싫었다. 빗방울이 고막을 때려 어지러웠다. 배를 주린 것이 며칠째였던가. 이블린은 휘청 바닥에 주저앉았다. 수군거리는 소리는 금세 빗속에 녹았고 멈춰 앉은 이블린의 주변으로 세상이 예사처럼 흘러갔다. 눈물과 빗물이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니 따뜻했다. 파랑과 노랑과 주홍이 흐릿하게 뭉그러졌다. 눈이 맑아지니 색유리로 빛을 댄 벽이 보였고, 다시 한번 눈을 깜박이니 머리 위에서 일렁거리는 촛불이 보였다. 미동도 없이 초를 들고 서 있는 수녀가 처음에는 정교한 조각상이라고 생각했다.

“깨어나셨습니까.”

이블린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저에게 달라진 것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온 몸이 깨끗했고 넓은 소매가 펄럭일 때마다 하얗게 광이 나는 가벼운 로브가 입혀져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 이 답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것은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자매님께서는 그저 이곳에 머물며 자매님의 평안을 찾으시면 됩니다.”

차분한 대답에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유난히 물끄러미도 바라보는 수녀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이블린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높은 천장은 금으로 장식되었고, 바닥에는 창을 부드럽게 투과한 색색의 햇빛이 흘러넘쳤다.

“여기는… 좋네요. 아름답고 조용해요. 꼭 전에 지내던 곳 같아요. 세상은 너무 시끄러워서…”

“소리가 싫은가요?”

이블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날부터인가 귀를 메우는 악마의 목소리가 싫었다. 감금되다시피 자란 병실에서 나와 갑자기 내던져진 영문 모를 세상이 싫었다. 모두가 싫었고 모든 소음이 싫었다. 고개 숙인 채 제 팔을 꼭 안은 이블린의 주변을, 수녀가 빙 둘러 몇 걸음을 걷다가 바로 옆에 멈추었다. 목소리가 바로 귀에 닿을 것 같았다.

“자매님께서 아직 복음의 소리를 모르셔서 그렇습니다. 소리가 싫다면, 소리로 가라앉히면 되는 법이지요.”

“복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환청도 떨쳐버릴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하죠. 처음에 자매님을 보았을 때는 죽은 사람인가 했는데, 이렇게 건강히 살아 계셔서 다행이에요.”

아이에게 이르듯 조근조근 대답을 하고 수녀는 이블린의 로브 너머 허벅다리를 꾹 눌렀다. 어째 다리가 따끔거렸다. 눈썹을 찌푸리고 로브 자락을 걷어들었다. 이블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깨끗하게 씻어낸 하얀 허벅지 위에, 얇은 칼로 여러 번 그어놓은 것처럼 붉은빛 띤 실금이 가득했다. 놀라 숨을 크게 들이쉬며 뒷걸음질치자 실금마다 붉어지며 방울방울 피가 맺혔다. 기겁하여 로브를 놓으니 흰 옷자락 위로 붉은 피가 아롱아롱 번져나갔다. 이블린이 당황해 물었다.

“저 그런데, 수녀님, 이건 무슨…”

고개를 드니 놀랍게도 수녀는 웃고 있었다. 아름다운 미소라고 생각했다.

“살아있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으니까.”

소녀가 그 미소를 홀린 듯이 바라보는 동안 수녀는 팔을 등 뒤로 옮겼다. 금속질의 무거운 것이 바닥에 끌려 끼릭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요하던 성당에 소리가 가득 찼다.

그날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