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분이 부족합니다… 황혼분 주세요…

아이들의 심장이 아직 덜 여물어서 한 뼘 주먹 안에 들어왔을 때의 습관이다. 지루한 수업 중에 그라이바흐는 자꾸 딴 구석으로 눈을 돌렸고 전날 밤에도 자기만의 연구에 몰두하던 메르키오르는 졸다가 퍼뜩 고개를 들었고 레드그레이브는 앞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는 듯 하다가 슬쩍 손을 양옆으로 내밀어 사내아이 둘을 꼬집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이제 얼얼한 옆구리를 만지는 아이들에게 레드그레이브는 수고했다며 뺨에 입을 쪽 하고 맞췄다. 그라이바흐를 먼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스쳐지나가는 입술을 통해 심장소리가 전달되지 않도록 가볍게 살짝. 그 다음에는 사랑하는 메르키오르에게 애정어린 입맞춤을 좀 더 길게.

그 때마다 까닭도 모르고 벌렁거리던 메르키오르의 부연 심장에 내용물이 점점 단단히 들어차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레드그레이브의 아름다움을 볼수록 메르키오르의 가슴에 자라나는 것은 추한 것뿐이었다. 열등감. 질투. 의심. 피해망상. 혐오. 그는 나날이 조금씩 더 의심했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그를 사랑했거늘. 추하고 괴로운 감정이 거꾸로 흐르는 피를 타고 200억제곱이 될 때까지 의심했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그를 사랑했거늘, 이 세계의 어머니는 모든 어리석은 이들을 사랑하고 이끌도록 여성으로 만들어졌으므로. 그녀는 각별히 가엾은 어린 아이같은 그의 형제를 더욱 어여삐 여겨 사랑했거늘. 레드그레이브는 메르키오르의 발작적인 행위를 장난치는 아이를 보는 어머니처럼 어여삐 보았고 그 감정이 광기에 달해서 세계를 집어삼켰을 때도 그랬다.

가엾은 어린 아이. 가엾은 메르키오르. 너의 청춘을 애도해.

오래도록 사랑했던 어리석은 아이의 까맣게 말라붙은 심장에 안식을 주기 위해 어머니는 발걸음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