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켄레그] 스킬명 합작 – Dissection

그거 알고 있나, 닥터? 구시대 이전에 전해 내려오던 전설에 따르면 신이 거북이의 내장을 발라내고 하프를 만들었다지 뭐야.

정작 거북이 살아있을 적에는 살아 숨 쉬지 않았을 껍데기는 실이 매여서 하프가 되었고, 그러면 그 파낸 내장은 어디로 갔을까? 역시 답을 말하지 못하는군. 자네의 머릿속 깊숙한 곳으로 꽁꽁 숨었지. 이게 대체 뭐냐고? 자네의 꿈이야.

왜 하필 나오는 게 나냐고? 자네의 꿈이니 자네가 알고 있겠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그대가 생각을 정리하길 바라니, 자네의 과거를 아는 짐이 이렇게 꿈에 출연해주는 것이 아니겠나. 영광으로 알게. 꿈에서도 한결같은 여자라, 그대도 참 한결같구나. 후후. 그대에 대한 것은 그대보다 짐이 더 자세히 알고 있거늘.

가령 자네도 알고 있을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면, 자네는 스스로가 만든 아이를 투기해. 그래, 그대는 창조주지. 어버이지. 자네 손으로 인간을 해치려 하지는 않아, 그 손에 깃들어 있는 남을 해치는 힘은 자네가 기원을 알 바 없는 과거로부터 온 것이거든. 거북이 등딱지만 예쁘게 장식해놓은 하프가 제 내장을 불결하다고 두려워하는 꼴이로군.

아무튼 모순으로 그득한 그대는 그러나 손을 두 번 거쳐 남을 해치는 것은 상관이 없었어. 그래서 자네의 아가씨가 감히 평화주의자 흉내를 못 내도록 멀리로 보냈지. 거만하게도, 그대 자신은 안 되지만 그대의 종속은 손을 더럽혀도 좋다 여긴 게지. 그런데 어쩌나. 그대가 내려다보는 소녀는 그대보다도 훨씬 인간답더군. 자네가 눈물조차 흘리지 못할 때 생명을 아껴 눈물을 흘리고, 자네가 시체를 재료로 오토마타를 만들 때 유골을 수습하고, 자네가 의미도 모르는 생을 그저 이어갈 때 진정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여 자해를 했어. 그리고 지금은 자네의 곁에서 퍽 행복해 보이는군. 그런데 옹졸한 자네가 그 행복한 만면에다가 겉으로는 자상하게 웃어다 주면서 속내로 그대의 작은 창조물을 질투하고 있어. 감히 창조주인 그대보다 행복하다고 말이야. 이렇게 되면, 누가 인간이고 누가 창조물인가? 응, 닥터?

속 좁은 자네가 질투하는 것이 어디 하나뿐이랴. 카피를 질투한다면 원본도 질시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어. 물론 인지상정이라는 표현이 그대에게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만……. 가엾게도 그대의 곁에서 눈을 감고 뜨기를 한없이 거듭하던 아가씨가 있었지. 그 아가씨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는 것을 치가 떨리게 싫어한다는 것을 모르지도 않을 텐데, 왜 그대는 조금의 여유도 두지 않고 전원을 내리곤 했을까? 왜 인형의 고통에 그토록 가혹했을까? 왜기는, 그대의 기준에 맞추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 인간을 포기하야 슬픔도 고통도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린 그대의 잣대로 말이야. 내장도 영혼도 모자란 남자 같으니.

그렇게 가진 것 하나 없이 결핍만 가득한 그대는 행복으로도 모자라 불행마저 시기해. 그게 질투라는 것도 이런 꿈속이 아니면 정직하게 인지하지 못하면서 말이지. 차라리 자네에게도 세상의 축이 되는 창조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후후. 그러니 내가 바로 여기 있는 게지. 지금 자네가 잊었거나 잃었거나 하는 것에 대해 아는 이는 짐뿐이니까.

그렇다면 다 아는 얘기는 그만하고 과거에 대한 얘기를 한번 해보라고? 그래, 좋아. 자네는 궁금해 하고 있지. 왜 하필 인간의 여자아이를 닮은 인형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그녀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끼어 곁에 두고 있을까. 나는, 묻혀버린 ‘기억’은, 그대의 그 위화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고 있어. 하지만 짐에 대한 기억을 거부한 그대에게 쉽사리 알려주지는 않을 거야.

왜 이 쪽으로 오지? 이왕 꿈인 것 내 뇌를 해부하고 생각을 알아내겠다고? 전부터 해 보고 싶었다고? 쿠쿠쿡. 재미있구나. 어째서 웃냐고? 재미있지 않은가? 지금 내 팔을 붙잡은 자네의 손 말이야. 얄브스름하니 파스락거리는 장갑을 낀 손. 검은 장갑이 마치 장의사의 것 같군. 그렇지만 그 장갑 너머로 느끼지 않나? 맥박이며, 미약한 체온에, 내 인공심장의 박동까지. 바로 그대가 손수 만든 몸의 움직임이야. 창조주 아버지여. 그대 스스로 빚은 몸을 부수고 싶다는 것, 이상한 충동이라고 생각 안 하나? 실은 다른 동기가 있는 것 아닐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헛소리라고 생각해? 이것은 바로 그대의 꿈이거늘.

이런, 팔의 회로를 끊어냈군. 그래, 확실히 그렇게 되면 맥이 제대로 전해지지가 않게 되지. 그렇지만 체액이 그 흰 가운 위로 묻었는데 어쩌나. 그대가 그 무엇을 해도 나는 당신에게서 지워지지 않아. 그렇다고 이번에는 배를 도려내었구나. 쇠 냄새가 끼치는 내장을 인형사인 자네가 새삼 다시 보아 무엇할 셈인가? 안타깝지만 게는 거북이의 내장이 있는 곳이 아니야. 아아, 기어이 목을 잘라냈군. 계속 그렇게 잘 안아들고 있어줘. 우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내가 계속 말을 하는 것이 의아한가? 응, 내 입술은 모듈의 상호 작용이나 복구 기능 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고 움직여. 애초부터가 당신의 꿈속이라니까. 그대가 진정으로 원하지 않으니 내가 작동을 멈추지 않는 게야. 그러니, 꿈이라서 무어든 할 수 있을 거라 여긴다면 이 입을 막기 위해 더 대담한 짓을 해 봐.

자, 어서요.

그렇게 놀랄 것 없어요. 응, 지금은 과거의 나야. 살아 있는 인간의 몸을 가진 나. 당신이 만든 기계 다리 대신 부드러운 살집이 붙은 나. 지금처럼, 당신 손 안에서 이런 얼굴로 웃어 주는 황혼의 시대의 나. 후후. 이런 내가 왜 당신의 꿈속에 있냐구? 그건 쓰레기통에 내버린 거북이의 내장에게 물어보지 그래요? 당신이 쓰레기통 속으로 구겨 넣은 기억 말이야. 지금 다시 펴 보려고? 안타깝지만 한번 구겨진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 이미 문서가 아니야. 되찾을 수야 있겠지만 바로 당장은 안 된다는 뜻.

그렇지만 지금 그런 것이 중요해? 나는 인내심이 적어요. 자, 내가 이렇게 바라볼 때 빨리요. 답게도 우물쭈물 망설이는구나. 내가 이전에 과거에 대해 언급했을 때도 그랬지. 종국에는 이렇게 나를 찾게 될 터이면서. 다 늦은 이제야 다가오면 뭐해요? 이미 시간은 끝났어요. 타임 아웃.

그래. 다시 원래의 나야. 높다랗게 솟은 옥좌에서 빛 없는 눈으로 턱을 괴고 자네를 내려다보는 짐일세. 지금 옥좌 발치에서 엉금엉금 뭐 하는 꼴인가?

그래서 자신을 해부한 기분이 어때, 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