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연구실 구석, 은은하게 퍼지는 전등 불빛에 소년의 가냘픈 얼굴이 비치었다. 내리쬐는 광선 밑으로 핼쑥하게 파인 뺨이 도드라진다. 늘 연구에 기력을 쏟느라 처진 눈매가 아이답지 않게 나른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눈동자에 빛나는 열정이 전반적인 인상을 뛰어넘었다.
한 마리, 두 마리. 하얗고 매끈한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발버둥을 칠 때마다 소년의 손에 꽉 낀 실험용 장갑이 질척질척 두꺼워졌다. 계속 그렇게 고개를 숙인 탓에 흘러내려오는 붉은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거칠게 걷어 내자 이마에 핏자국이 도장처럼 찍혔다. 찍찍대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로쏘는 어머니의 새된 목소리를 떠올렸다.
“이 무수한 변이군을 관찰해서 알아낸 게 겨우 그거니? 그 정도는 판데모니움의 어느 엔지니어라도 알 만한 사실이야. 새로운 지식은 조금도 파악해내지 못했구나.”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는 로쏘의 이마를 콕 찔렀다.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자 시야가 컴컴해지고, 어머니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만이 귓가에 울렸다.
“남들도 다 아는 지식 따위는 의미가 없어, 로쏘. 먼저 얻어내는 새로운 지식만이 가치가 있는 거야.”
로쏘의 어머니는 뛰어난 연구자였다. 과거형인 것은 그녀의 추론으로는, 남편과 아이에게 그 까닭이 있었다. 야망 있던 여자는 재능을 타고났지만 자신의 빛을 가릴 만큼은 아닌 신랑감을 찾아냈다. 각자의 뛰어난 정자와 난자를 추출해 실험관에서 아이를 배양하고, 인큐베이터에서 키워내 자식까지도 완벽하게 만들어낼 요량이었다.
하필 그 시기에 모성의 영향력에 대한 사회적 공론이 대두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결코 비난받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콧대를 높이 들고 처음부터 그러길 바랐던 것처럼 아이를 뱃속에 품었다. 그리고, 분명 모성은 환상이었다. 몸이 무거워지고 손발이 묶인 그녀를 우울증이 거대한 파도처럼 덮쳤다. 게다가 약 일 년의 공백은 동료인 동시에 경쟁자였던 남편과 그녀와의 격차를 한참이나 벌려놓았다. 어느새 까마득하게 추락한 그녀는 쉽사리 예전의 위치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보상을 받기를 바랐던 그녀는, 희생의 대가로 얻은 아이에게 축문이자 저주를 계속해서 속삭였다. 진정으로 새로운 지식은, 혼자서만 얻을 수 있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마르그리드가 고개를 들고 로쏘에게 물었다.
“글쎄. 잘 기억나지는 않네. 그 돌연변이 쥐들의 뇌를 하나하나 다 해부하면서 행동을 기록했어. 총 이백 오십 삼 마리였나? 어머니가 칭찬해주기를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머나, 당신도 어릴 때는 꽤나 귀여운 아이였구나. 그래서 엄마한테 쓰다듬이라도 받았어?”
“아니. 이건 분명히 학계 어디에도 전에 없던 학설이라고 확신하고 꽤 신이 나서 연구 결과를 브리핑했는데, 어째 어머니는 들을수록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라. 그때가 되어서야 알았어. 이 여자는 내가 자기를 뛰어넘는 게 무섭구나. 난 지금 이 여자를 뛰어넘었구나. 새로운 지식 하나 알려주지 못하는 여자는 더 이상 재미가 없어져서, 이제는 잘 기억도 안 나.”
“무서워라. 이거 나도 흥미가 없어지면 버림받는 거 아냐?”
달처럼 희게 빛나는 마르그리드의 몸을 내려다보며 로쏘는 헛웃음을 삼켰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소리라니, 이 여자는 참 깜찍도 하다.
“아마 당분간은 그럴 일 없을 것 같은걸. 당신은 인간의 최대 난제라는 사후세계를 몸으로 겪은 여자잖아.”
“말이 좋아 그렇지, 일반적인 사후세계를 겪은 건 아니잖아?”
“그렇지만 난 아직 당신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어.”
말을 이으며 로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구조도. 생각도.”
마르그리드가 작게 키득거렸다.
“확실히, 로쏘 당신은 이계의 생물에는 박식하지만 정작 인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으니까.”
“그럴지도 모르겠군.”
뺨에 여자의 손이 닿았다.
“조금 놀랐어. 순순히 인정할 줄은 몰랐는걸.”
“글쎄, 당신의 그 몸에 대해 탐구하다 보면 인간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될지도 모르지.”
“나보고 인간이 아니라 영상이라고 하지 않았어, 당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르그리드는 젖먹이를 어르는 어머니처럼 로쏘를 가슴께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품에 묻혀 로쏘는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나는 알아낼 때까지 탐구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지. 알아듣겠어?”
마르그리드의 웃음소리가 몸을 타고 곧장 전해졌다. 그러나 그녀가 자처하는 요부보다는 차라리 자애로운 어머니에 가까이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다. 아주 까마득한 옛날, 어머니의 태내에서 들었을 것 같은 고요한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로쏘는 그것이 썩 좋으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연구자는 다시 둥근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녀를 한 올 한 올 탐구하기 시작했다.
결국에 로쏘는 그가 알고자 했던 진리의 끝까지 내달렸다. 움직여도 움직여도 시야 안에는 있지만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둥근 달 같은 여자를 좇아 뛰다가 죽음에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인간의 최후의 난제라는 사후 세계를 직접 몸으로 겪고 부활했다.
하지만 나는 모르겠어. 마르그리드. 아직도 사람을 모르겠어. 나는, 당신을 알수록 모르겠어. 당신은 대체 무엇을 위해 죽었던 건지. 어디까지가 진심이었는지.
진흙이 질척질척 엉키는 현세의 땅 위에 서서 모래바람이 섞인 매캐한 공기를 들이쉬었다. 확실히 심상의 세계인 성유계와는 다르게 현세에 서 있는 순간은 잡티가 많고 쓰라렸다. 쓰린 가슴을 누르며 눈을 들자 사람들이 개미처럼 우글거렸다. 몸만 자란 소년은 희게 달라붙는 실험용 장갑 대신에 공간을 절단해내는 장갑을 꼈다. 메스 대신 케이오시움과 독가스를 들었다. 진리를 알아낼 때까지 연구할 표본은 그가 다시 돌아온 이 세계에 너끈히 차고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