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모니움의 최상층에 위치한 의회장 레드그레이브의 집무실은 좋게 말하자면 정결하고, 보편적인 감상을 이르자면 살풍경했다. 어느 날인가는 그녀의 수하가 집무실에서 보고를 마치고 떠나기 전에 멈칫 뜸을 들이며 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만 다음 날 아기자기한 꽃 몇 송이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의아해하는 기계소녀에게 사서는, 레드그레이브님을 꼭 닮은 꽃이라 가져와 보았다며 후드를 푹 눌러 쓴 얼굴을 숙였다. 고맙다는 세 글자가 귀에 닿고 나서야 사서는 얼굴을 겨우 들고, 미소짓는 소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상기된 뺨으로 방 이곳저곳에 꽃을 장식해놓았다.
그가 떠나고 홀로 남은 소녀는 쇠로 된 손가락을 뻗어 꽃잎을 쓸어보았다. 보드랍지가 않고 까끌했다. 그가 가져온 것은 향기가 없는 조화였다. 레드그레이브는 문득 자신의 손마디를 쓸어보았다. 그 역시 부드러운 대신 거칠었다. 살아서 그녀에게 얼굴을 붉히는 사서와는 달리. 그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꽃잎을 세게 쥐었지만 부서지지 않았다. 인간조차도 아닌 꼴로 이렇게 아득바득 움직이는 자신과 꼭 같았다. 그는 자꾸만 그녀를 비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을 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