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블린] 내상

누가 언제부터 소녀를 마녀라고 불렀는지 그것은 모른다. 다만 아는 사실은 소녀가 불가해한 존재라는 것이다.

제 부모와 함께 셋이 소용돌이로 휘말려 들어갔는데 나온 것은 여자아이 하나였단다. 첫 번째 불가해는 그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온 지역을 침식하기 시작한 소용돌이에서는 자꾸만 새로운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대처법을 미처 알지 못하고 속수무책 당하는 사람들을 먹이로 삼았다. 따라서 미지는 공포와 혐오의 동의어가 되었다. 그리고 소녀를 아는 사람은 남지 않았다. 이제 소녀는 불가해고 타자이고 소용돌이에서 나온 괴물이다. 마녀라는 손가락질에 한사코 고개를 저어도 그 호칭은 사라지기는 커녕 낙인이 되어 소녀를 따라다녔다. 콘라드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꺼리는 마녀와 연이 닿을 일은 없었다.

지상에는 소용돌이가 만연하여, 질병도 고통도 기아도 고아도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난다. 부모를 잃고 홀로 남은 콘라드 역시 소용돌이가 남기고 간 수많은 참상의 결과물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의지할 대상을 찾는 대신 스스로를 돌보아야 하는 아이는 숲 속에서 아무 풀뿌리나 닥치는 대로 캐어 먹다가 문득 바닥에 고꾸라졌다. 몸에는 열이 오르고 세상은 꺼멓다. 이대로 끝이 나도 좋다 생각하다가도 분해서 눈물이 난다. 그것을 소녀가 발견하였다. 혼란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보아야 하기에 남을 연민하고 돕는 법에 대해 대개 잊어버렸다. 콘라드는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달랐다. 어린 콘라드를 어르고 달래어 안고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두 번째 불가해였다.

소녀를 만나기 전에 세상은 위협의 구렁텅이였다. 도처에 위기가 가득해서 머릿속에 남는 것은 생존뿐이다. 그러나 소녀를 따르기 시작하면서 소년은 처음으로 남을 믿는 법을 배웠다. 그 옆에 있으면 세상에 선의라는 것이 문득 문득 별처럼 반짝인다. 숲 속에서 약초를 다듬는 소녀를 따라 곁에 있으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햇빛의 눈부심이 보이고, 꽃의 향기로움이 느껴진다. 콘라드는 그것을 소녀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어려서 부모를 잃은 아이는 배움도 책도 없어 수사를 알지 못했다. 그저 이대로 둘이 함께 모든 것이 괜찮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것을 부르는 방법을 콘라드는 몰랐다.

소녀와 어린 아이가 늘 함께 지냈던 것은 아니다. 둘은 가족도 아니고 그러자는 약속도 아니하였다. 콘라드는 저 홀로 다니면서 자꾸만 잘못된 것을 먹었다. 그러고 나면 챙겨먹지 못하여 허약한 아이는 복통에 시달리면서 언제나처럼 이블린을 찾아갔다. 콘라드는 이블린이 노래를 부르면 내상이 낫는다는 것을 알았다. 울며 보채면 이블린은 망설이다가도 머뭇머뭇 아이를 제 무릎 위에 앉혀 놓고 눈을 감았다.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냇물 흐르는 소리는 숲먼지 속에 조용히 반주로 내려앉고 있는 줄도 몰랐던 온갖 동물이 다가와 귀를 기울였다. 실은 그 황홀한 모습이 보고 싶은 깜찍한 속내도 있었다. 이블린이 노래를 부르기 전마다 망설이자 불안함에 따져 우는 콘라드에게 이블린은 약속을 했다. 너의 내상은 꼭 내가 고쳐 줄게.

아마 그때였던가, 콘라드는 깨달았다. 이블린은 마녀가 맞다. 더 이상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가만 보면 이블린이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노래로는 내상을 치유하고 남들이 먹고 탈이 나는 풀뿌리로는 외상을 치유하는 약을 지었다. 소녀는 이능을 되는 한 숨기려 했지만 유일하게 저를 따르는 어린 아이의 칭얼거림 앞에서는 굳은 결심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연이어 이적을 보이는 이블린에게 콘라드는 어떻게 그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소녀는 더듬더듬 설명을 해 보았지만 아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계속 보여 달라며 있는 힘껏 따라 해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세 번째로, 소녀는 불가해였다. 그것이 왜 그리 속상한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도 그러한 능력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소녀 앞에 당당하게 서고 싶다고.

그리고 소망은 소망으로 끝났다. 사람들이 소녀의 이적을 목격한 까닭이다. 제 정체를 숨겼던 마녀에게 사람들은 겁에 질려 윽박지르고 돌을 던졌다. 아픔에 떠는 소녀가 고개를 젓고 소리를 지르면서 한 차례 불꽃이 일자 두려움과 분노는 불이 올라 거세질 따름이었다. 소용돌이로 인한 혼란 속에 사람들은 탓할 대상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의혹의 눈길은 아이에게도 꽂혔다. 이능을 보여 달라 졸랐던 자신이 잘못했던 것일까 생각하며 떨면서 마녀사냥을 지켜보던 아이는, 저를 발견한 사람들의 눈길이 대번에 꽂히자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았다. 뒷걸음질 치는 아이에게 마녀가 소름끼치는 소리로 웃으며 손을 거칠게 잡아 질질 끌었다. 사람들은 마녀에게서 아이를 구하고자 난리가 났다. 마녀에게 발길질과 흙이 끼얹어졌다. 고아가 된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에 품에 안긴 아이는 다시는 마녀를 보지 못했다. 겁이 났던 탓이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저 마녀가 너를 이용한 것이라 하자 그렇게 믿었다.

아니, 아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이다. 소녀가 어디로 갔는지 영영 알지 못하게 된 후에야 소년은 뼈저리게 후회했다. 자신이 비겁하여 소녀가 저를 지키려는 것을 뻔히 알 수 있으면서도 무의식과 본능이 시키는 대로 모른 체를 했다. 언젠가 힘을 얻고 소녀를 다시 본다면 그때는 결코 모른 체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다시는 소녀를 볼 수 없으리라는 것도 마음 한 구석에서 알고 있었다. 소녀가 사라지고 소년은 다시 굶주렸다. 그때 교단에서 손을 내밀었다. 생존도 생존이지만, 당시 소년은 무엇보다도 힘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교단에 들어가니 삶은 확연히 달라진다. 배고플 때 언제든 밤참을 먹을 수 있고, 깃을 채운 따뜻한 침대 위에서 아무 걱정 없이 늦잠을 자도 좋다. 야윈 몸 위로 헐렁한 수도복을 입은 아이를 사람들이 따뜻한 눈으로 보아 준다. 그 모든 것을 주는 교단에서는 신을 믿으라, 모든 것이 신의 은총이라 한다. 이제 소년에게 신은 곧 세상이며 축복이다. 뒤늦게 충족되는 배움에 대한 목마름과 함께 소년은 교리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무언가 잊고 온 것이 있던 것도 같지만 평안한 삶 속에서는 더 이상 그 마음에 걸릴 것이 없음이라. 아멘.

그러니 이제 몰라보게 자라난 청년이 ‘마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리고 교단에 구금된 소녀를 보았을 때 죄책감과 당혹감이 엉망진창으로 가슴을 질척질척 밟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누가 언제부터 소녀를 마녀라고 불렀는지 그것은 모른다. 다만 아는 사실은 소녀가 불가해한 존재라는 것이다. 어찌 자신은 이렇게 자라났는데 소녀는 수년 전에 헤어졌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인지, 어찌하여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때의 감정을 가슴 속에 그대로 불러일으키는지. 아니, 그때와는 다르다. 마냥 안기고 싶었던 소녀는 이제 자신에 비하면 너무나도 가냘프다. 아이를 보고 어쩔 바 없는 듯 웃어주던 그때에 비하면 표정 역시 파리하다. 자신을 감금하는 역할의 청년에게는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소녀가 자신을 알아보는지, 알아보지 않는지 그것은 모른다. 또한 감히 쉽게 물어볼 수도 없다.

콘라드가 한창 교리를 공부하면서 성서에서 읽은 신의 이적 중에는 물 위를 걷는 것도 있었다. 마음속으로 셈을 수백 번도 더 하고 두방망이 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겨우 말을 걸면 소녀는 시선을 사뿐히 내리깔고 고개를 돌렸다. 기다란 속눈썹이 나비 날개처럼 떨렸다. 작은 발을 들어 뒤를 돌았다. 그리고 저벅 저벅 심장 위를 걸었다. 따라서 이제 콘라드는 그러한 마음을 어떻게 부르는지 안다. 홀로 세상을 헤매던 어린 콘라드에게 나타난 소녀는 신이었고, 그 마음은 신앙이었다. 그러나 그 호칭은 허락되지 않는다. 소녀는 이단이다. 그래서 콘라드는 소녀를 마녀라고 불렀다. 마녀 역시 콘라드를 교부라고 불렀다. 그래서 콘라드는 교부가 되었다.

아이는 자라나 청년이 되었고 지식도 수사도 마음도 자라났다. 성서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 느껴지지 않는 것이 마녀에게서 보인다. 설렘도 떨림도 그리고 희망도,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다. 마녀는 저를 기억할까, 기억하지 못할까, 그때 마녀를 두고 달아난 자신을 용서할까, 용서하지 않을까, 모른다면 일러주면 저를 미워하고 원망할까. 마녀는 아직도 불가해이다. 추론이 갈릴 때마다 천국이었다가 지옥이었다가 까마득하게 점멸하는 세상에서 혼자 고뇌로 보내는 밤은 이윽고 심장을 쥐고 내장을 흔든다. 교부는 복부를 움켜쥐고 어린 날의 약속을 기억해내며 마녀가 구금된 방 창문 너머에 선다. 풀벌레 소리 속에 숨을 감추고 한참을 기다리면 기어이 잡음은 반주로 내려앉고 마녀는 노래를 읊조리기 시작한다. 다시 세상에 별이 반짝이기를. 그러나 곡조는 하염없이 서글플 따름이고 한 맺힌 가락에 간혹 섞이어 들어오는 다른 감정은 분노뿐이라, 추론은 부정의 축으로 빠르게 무너지고 세상은 막 지옥이 되려고 한다. 교부는 겁화를 막으려고 어린 날 행복했던 노랫소리를 떠올리려 애를 써 본다. 그러나 잔상은 실재를 넘지 못하고, 그에게 남는 것은 내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