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하나 허투루 준비된 것이 없었다.
정말이지 그림으로 그려낸 듯이 고운 소녀였다. 손톱 끝부터 착 붙어 올라가는 장갑은 검은 윤이 나는 명주천으로 자그마한 손에 딱 맞춰 직조된 것이었다. 같은 빛깔의 원피스 역시 소녀의 눈 색과 꼭 같은 보랏빛의 프릴로 장식된 목깃에서부터, 양옆 열 개씩 도합 스무 개의 단추를 단 코르셋 짜내기로 조인 허리, 그리고 걸음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두 겹의 치맛단까지 몸에 꼭 맞추어 내려왔다. 얇게 비치는 스타킹을 송아지 가죽을 무두질하여 만든 부츠가 덮었다. 격식을 차리기 위하여 검은 색이 주가 된 차림새이지만 머리에 리본 머리띠를 하여 차분하면서도 퍽 앙증맞았다. 살짝 분홍빛을 띠는 몸에는 곱게 간 보석가루를 체로 가느다랗게 친 후 양모로 된 화장붓을 들고 혹여나 어린 피부가 상할까 조심조심 발라두었다. 그리하여 검은 옷 사이사이로 드러나는 소녀의 살결에서는 하얗게 빛이 났다.
무엇 하나 허투루 준비된 것이 없었으나, 그 무엇보다 가장 공을 들여 준비된 것은 소녀의 존재 그 자체였다. 소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옷은 숨을 쉬기조차 갑갑할 만큼 몸을 죄였다. 하지만 답답함에 숨을 크게 내쉬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쉽사리 흐트러질 것이다. 소녀는 그림으로 그려낸 듯이 곱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었다. 배에 힘을 세게 주어 숨을 참고 양 손 끝으로 조심스레 치맛자락을 들었다. 오늘의 강습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어서 정원을 가로질러 가야만 했다. 무성한 풀 위에 조심조심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비에 젖은 정원에서 풀 내음이 훅훅 쏟아졌다. 어질어질했다. 소녀의 오감은 남들보다 배로 예민하도록 제작되어 있었다. 이를 악물고 몇 걸음을 더 걷는데 그 예민한 감각의 끄트머리에 이질적인 것이 걸렸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얇은 스타킹 위에 달팽이 한 마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소녀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선명한 보랏빛 눈이 크게 뜨였다. 소녀는 달팽이를 잡아들어 다리에서 떼어냈다. 손바닥 위에서 어린 달팽이 한 마리가 꾸물꾸물 기어가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주먹을 꽉 쥐었다. 손 안에서 껍질이 바스스 으스러졌다. 장갑 너머로 손바닥에 끈적끈적한 감촉이 선명했다. 소녀는 그 장갑을 벗어 정원에 버렸다. 강습에 늦어서는 안 되기에 다시 발걸음을 서둘러 옮기려는데, 웃음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작은 키득거림이었다. 소녀는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를 의심하고 시기하여 사생활에서 꼬투리를 잡아 찍어 누르려는 사람이야 흔하고 흔했다. 누가 내는 웃음소리인지 찾아서 어떻게든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도통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찾기 쉽지가 않았다. 웃음소리는 점차 커져 폭소에 가까워졌다. 그제야 소녀는 그것이 그녀가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임을 알았다. 바로 소녀 자신의 목소리였다.
[잘 했어, 레드그레이브.]
웃음을 가까스로 참는 것 같이 바람 새는 소리였다.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주변 그 어디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먹을 꽉 쥐고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지?”
[나는 너의 ‘분노’야, 레드그레이브.]
서둘러 귀를 막아보았으나 끊이지 않는 목소리는 특정한 장소로부터 들려오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어딘가 이상해진 걸까?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확실히 당황과 두려움보다도 더 큰 감정이 있었다. 저 목소리의 근원을 찾아서 멱살을 잡고 싶다는, 분노.
[하하하하하.]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소리는 다시 한 번 웃어젖혔다. 레드그레이브는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고, 더 이상 괴상한 목소리에 대답을 할 의미도 찾지 못했으며, 목소리의 근원이 물리적인 것이라면 최대한 벗어나고 싶었다. 달리고 또 달려서 겨우 목적지 앞에 도달했다.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던 차림새는 잔뜩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숨을 몰아쉬며 문 앞에 등을 기대고 머리 위에 손을 올려 리본의 모양을 정돈하고, 목깃을 다듬고, 제멋대로 풀린 코르셋 짜내기를 꽉 조여 다시 묶었다. 등을 바로 세우고 마지막으로 옷을 몸에 붙도록 살살 털어 내는 소녀에게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도망쳐도 나는 죽지 않아. 나는 모든 공간, 모든 시간에 존재하니까.]
소녀는 고개를 높이 들고 눈을 크게 떴다. 고작 뭔지 모를 목소리 따위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대로 목을 꼿꼿이 세우고 문을 열었다.
***
“너는 기적이란다, 레드그레이브.”
스승의 목소리는 따스하고 자애로웠다.
“수도 없이 많은 엔지니어가 가장 완벽한 지도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렸어. 그렇지만 인자와 인자를 섞고, 각각의 형질을 세밀히 조정하여도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일 뿐이어서, 결점과 모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
하지만 레드그레이브는 그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는 없었다. 레드그레이브는 망설이고 있었다. 이상한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말해야 할까? 그 웃음소리의 잔상이 남아 환청처럼 머릿속을 맴돌며 레드그레이브를 불쾌하게 했다. 혹은, 환청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해야 할까? 하지만 어쩐지 망설여졌다.
“모두가 조금씩 지쳐갈 때, 수백 년의 학술, 수천 번의 실험과 수만 명의 피땀 위에서 마침내 네가 탄생되었어. 너와 같이 조금의 결함도 없는 존재는 그제껏 없었단다.”
레드그레이브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너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란다. 너의 판단으로 모든 사람을 이끌고,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완전한 네가 존재하는 게야.”
“제가 원하지 않는다면요?”
되바라진 말대답에 스승은 당황한 듯이 웃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니?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렴. 너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 누구도 탐을 낼 만한 절대적인 권력이란다. 인간의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네 판단으로 재단하고 그 기준에 거스르는 이는 징벌할 수 있어. 말했잖니, 너는 그것을 위해서 만들어진 가장 귀중한 작품이야.”
“만약 저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요?”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눈동자를 굴리는 스승을 레드그레이브는 가만 바라보았다. 소녀는 눈앞의 인물을 잘 알고 있었다. 스승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곧바로 대답하지 못할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그것이 상대가 들어서 문제가 있을 이야기가 아니라면. 곧 스승은 웃었고, 레드그레이브도 마주 웃었다.
***
“그러니 부탁할게, 그라이바흐.”
엔지니어들이 선별한 ‘작품’은 하나가 아니었다.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져,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존재 자체로서의 목적성을 배제당한 세 명, 아니 세 개의 아이. 그렇기에 소녀는 그 쓰라린 공통점을 형제라고 명명하길 원했고, 남은 둘은 소녀의 말에 기꺼이 따랐다. 사실 그 둘에게 소녀는 형제라기보다도 살아 숨 쉬는 여신이었다. 그렇기에 소녀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소년의 얼굴에 고통이 완연했다.
“기꺼이, 레드그레이브.”
소년은 주머니에서 작은 장치를 꺼냈다. 다이얼을 돌리고 버튼을 조작하자 기계로부터 웅얼거리는 듯한 잡음이 새어나오다가, 이윽고 사람의 목소리가 되었다. 스승의 목소리였다.
값비싼 작품에는 관리가 필요하다. 엔지니어들은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주기적으로 세 아이의 상태에 대한 보고가 올라간다는 것을 사실 두 아이는 알고 있었고, 지금 그것을 도청할 심산이었다. 그렇지만 들리는 것은 시시껄렁한 안부와 건강 상태에 대한 이야기 따위뿐이었다. 한참을 계속되는 잡담에 슬슬 지루해 질 때 즈음, 레드그레이브의 눈이 번쩍 뜨였다.
“헌데, 레드그레이브가 이상합니다. 갑자기 세계의 감시를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어쩔 거냐고… 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어요.”
“무언가의 징후라도 된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정말로 신경이 쓰이는 말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자신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으면 어쩌냐고 하는데, 생전 그런 적이 없던 아이라. 상상력을 지나치게 발휘하는 것인지, 협박인지, 아니면 진짜로…”
“만약에 진짜로 심각한 문제라도 있다면, 어떡합니까?”
기기에 귀를 기울이는 레드그레이브의 마음은 어쩔 바 없이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스승은 유전자 조작 프로젝트의 수석 엔지니어이자, 레드그레이브의 상태를 어려서부터 돌보아 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그의 말에 따라 그녀의 앞날에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정책의 계산기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폐기해야죠. 이 세계의 운명이 달린 사업이에요. 우리의 꿈의 지도자는 완벽해야 합니다. 어렵겠지만, 새로 만들 수 있어요. 그렇다면 레드그레이브는 위험 요소가 되겠죠.”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던 심장이 아까와는 다른 감정으로 방망이질을 쳤다. 피가 온몸을 역류하며 제멋대로 끓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하얗게 달구어졌다. 레드그레이브는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손을 뻗어 옆에 선 소년의 손을 잡았다.
“부탁이 하나 더 있어, 그라이바흐. 나 혼자서는 쉽지 않을 거야.”
***
이전 수석 엔지니어는 어떤 특수한 가게 안에서 죽음을 맞았다. 오토마타가 정교해지면서 새롭게 나타난 이전에는 없었던 형태의 가게로, 쾌락을 파는 장소였다. 좁은 방 안에서 원인불명의 오작동을 일으킨 오토마타에게 피할 새도 없이 공격을 당한 것이 사인이었으며, 회수조차 어려울 만큼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을 겨우 수습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불명예스러운 죽음이었다.
그의 장례식에서 검은 베일을 쓴 어여쁜 소녀가 고개를 깊게 숙이고 있었다. 비록 그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하였어도 그의 마지막 걸작은 빛바램이 없는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객들은 소녀에게 앞 다투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소녀는 침울한지 계속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묘비 앞에 서서야 레드그레이브는 고개를 높이 들고 감정을 알기 어려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앞으로도 당신의 마지막 가르침에 충실하겠습니다. 나는 좋은 제자였어요.”
이어지는 장례식 내내 소녀는 손을 가만히 두지를 못했다. 손바닥을 긁고, 깍지를 껴 꼼지락거렸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가면서도 계속 그랬다. 소녀는 거처에 가까워질수록 참지 못하고 발을 서두르더니 결국 뛰듯이 방에 들어와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인간의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네 판단으로 재단하고 그 기준에 거스르는 이는 징벌할 수 있어.’
그 말을 떠올리며 레드그레이브는 손바닥을 쫙 펴서 내려다보았다. 아무 것도 묻어있지 않건만, 끈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 장갑을 낀 손바닥 위로 부서진 달팽이 껍질이 아른거리다가 흐려졌다. 게다가 환각은 촉각과 시각에서 끝나지 않았다.
[잘 했어, 레드그레이브.]
레드그레이브는 눈썹을 찌푸렸다. 목소리는 레드그레이브의 분노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었다. 그것을 기억해낸 레드그레이브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큰 소리로 웃었다.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음성이 마치 이전에 들었던 웃음소리와 같았다.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 분노해, 레드그레이브. 세상을 발밑에 두고 휘둘러 짓밟아. 네 언짢은 날숨으로 세계를 부숴버리고 고갯짓으로 날려버려. 너는 할 수 있어. 굴레를 던져버려. 나는 그럴 수 없으니까!]
격정과 분노와 권력욕에 끓는 목소리로 호령하던 소녀는 곧 레드그레이브의 귓가에 더없이 달콤하게 속삭였다.
[특별히 네게도 알려줄게. 우리가 세상을 위해서 봉사할 필요는 없어. 세상이 우릴 위해 봉사하는 거야.]
목소리는 귀에 들리는 듯도 했고, 가슴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파장에 맞춰 고동치는 자신의 마음이 있었다. ‘목소리’가 그녀만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는 레드그레이브 자신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분노는 그렇게 레드그레이브의 가슴에 똬리를 틀고 한참이나 그녀를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