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로휀.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람도 따로 없을텐데 이렇게 굳이 밝혀야 하나 모르겠지만, C.C.입니다. 치즈 크러스트가 아니라 C.C.예요. 자꾸 이상한 철자 붙여서 부르지 마세요.
저는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다만 그렇게 안 생겨서는 자꾸 비꼬는 말투를 쓴다고 사람들이 놀라곤 하네요. 이상한 성격을 가진 노인네랑 같이 지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해놓았지요. 정말 어떻게 책임질 건가요, 이거.
아무튼,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제가 겪은 한 가지 신기한 일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아시겠지만, 이곳에는 여성이 적고 남성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아주 아름다운 여성을 봤을 때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웃지 마세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아주 묘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면서, 여기에 여자가 오다니 드문 일이네, 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는 저를 아주 반겨주면서, 레지멘트에서 알아두면 좋을 점들,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 알려주었어요. 가령 목요일에는 훈련이 있어서 점심 때 얼른 가지 않으면 음식이 금방 동난다거나 하는 소소하지만 유용한 정보들이요. 세세한 마음씀씀이에 너무나 고마워서 이름이라도 물어보려고 고개를 드니, 그녀는 마치 그 자리에 있던 것이 거짓말인 듯 사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 멍해졌지만 곧 수속 절차를 마저 밟느라 그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프리드리히 씨 – 무뚝뚝하거나 지나치게 혈기왕성한 군인들 사이에서 성격이 시원하고 밝고 좋은 분이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 가 무언가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묻기에, 그 때 일이 생각나서 푸른 단발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여자의 이름을 아냐고 했더니 레지멘트에 그런 여자는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없다고 다시 물으려는데, 그러고보니 혹시 배를 내놓고 있지 않았냐고, 그런 유령이 나타났다가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것을 본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 정말 부끄럽지만…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깨어나 보니 의무실이었고, 유령의 소문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니, 하필 ‘유령’으로 알려진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군요. 그녀의 인상착의가 판데모니움에서 협정심문관에게 살해당했던 어느 테크노크라트와 꼭 같다구요. 그 사진을 전송받아 본 순간…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기억이 잘못되지 않은 이상, 표정과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 외에는 정말로 저를 도와준 그녀와 꼭 닮은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라면 알고 있겠지요? 시체에서 기억을 수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죽은 자를 움직이고, 되살리고, 인격을 부여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입체영상일까요? 그렇다면 누가, 무슨 까닭으로 그런 것을 레지멘트에 보냈을까요? 물론 저에게 해를 끼치기는 커녕 도와준 존재이니 당신이 바쁘다면 신경쓰지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당신이라면 흥미를 가지겠지요? 사소한 정보이지만, 당신의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나요.
여담이지만, 그 여자에 대해 캐묻고 있는데 판데모니움에서 온 붉은 머리의 괴짜 엔지니어 – 이름은 로쏘라고 합니다 – 가 제대로 일은 안 하고 공연히 쓸데없는 것을 묻는다며 꾸중을 하더군요. 원래 그렇게 남에게 신경쓰는 사람이 아니건만… 이상하네요. 아무튼 그 후로 이상하게 .. 그로부터 자주 꾸중을 듣고 있(번짐)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으며, 저는 새로운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 걱정은… 아. 편지지를 다 채워가네요.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
P.S. 당신이 내킬 때나 답장을 쓰는 성격인 건 알지만, 일단 편지를 받으면 일단 받았다는 전보부터 보내주세요. 받았는지 확인이 되지 않으면 답답하니까요.
당신의 친구, C.C.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