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야트막한 산 아래로 집들이 옹기종기 펼쳐진 마을이었다. 그 중 마을의 가장자리, 산기슭에는 언제부터인가 아무도 살지 않는 낡은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벽은 닳아 빠지고 지붕은 헤어져 나간 그 오두막에 외지인 한 명이 흘러들어와 자리잡았다. 처음엔 출신을 알 수 없는 남자를 경계하던 마을 사람들은 다 무너져가던 오두막이 하루가 지날 때마다 깔끔하고 튼튼하게 고쳐져 가는 것을 보면서 그 집의 새로운 주인이 꽤나 정갈하고 성실한 성품임을 알았다. 그리고 달이 열 번 기울었을 때 그 집을 방문하지 않는 마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의사였다. 그것도 아주 유능한 의사여서, 마을 사람들은 그가 마술이라도 부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해가 지나고 지나도 그는 전혀 지치는 기색이나 얼굴에 그늘이 지는 흔적이 없었기에 더 그랬다. 어쨌거나 조금의 보답으로도 촌구석에서 머무르며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사람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고맙다고 웃으며 종종 빵이나 새로 짠 우유 따위를 가져다 주면서도, 자신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 그 남자의 과거에 대해 수군거리고는 했다. 오로지 아이들만이 아무런 티끌 없이 그 집을 찾아가 말을 걸고 재잘거렸고, 그래서 어른들은 듣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백년 전의 이야기나 저 멀리 공중도시의 이야기라거나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인형이 활약하는 이야기라거나, 하나같이 아이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저기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빛덩이가 진짜 공중도시라고요? 말도 안 돼, 난 안 믿어요. 그렇게 말해놓고 남자가 그래, 그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겠구나. 라고 말하자 입술을 내밀고 샐쭉거리던 아이는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웃으면서 남자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그럼 그 얘기 해 줘요, 그 얘기! 시간을 넘어가려고 몸을 바꾼 여자 얘기요.”
그 말은 예상하지 못한 듯 순간 남자의 눈에 기이한 빛이 스쳤다. 그렇지만 곧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래. 아주 아름답고 총명하게 태어난 여자가 있었어. 몸에서 반짝반짝 빛이 새어나오는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은 그 여자의 발 밑에 세계를 바쳤단다. 그런데 어느 날…”
따로 오는 환자도 없어서 저녁이 되고도 계속 이야기를 듣겠다며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겨우 돌려보내고 밤이 깊었다. 어둠 속에 램프를 켜고 홀로 오두막에 앉아 있자 산새 소리가 들려온다. 고즈넉하지만, 한편으로는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원체 깔끔한 성격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싫어서 더더욱 맹목적으로 귀신 나올 것 같은 오래된 집을 정비하고 또 정비했다. 홀로 있는 밤은 외롭고 두렵다. 애초에 그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예전에는 잊은 기억을 자꾸만 꿈꾸는 탓에 그랬고, 지금은 두고 온 것이 가슴에 밟히는 탓에 그러했다. 질릴만치 긴 세월을 얼키고설켜 온 여자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것을 상기하자 까만 밤공기가 무겁게 몸을 내리누르는 것만 같다. 목이 꽉 메어 오는 탓에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뜨려고 높이 달린 찬장을 여는데, 그만 컵이 떨어졌다. 그로서는 흔치 않은 실수였다. 컵은 장 밑으로 굴러들어가 바로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굽혀 보지만 쉽게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그 와중에 끼익- 하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늦은 밤중에 무슨 일입니까? 저는 당장은 조금 바쁩니다.”
대답은 없다. 여전히 컵을 꺼내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남자의 생각이 누군가 긴급한 환자를 데리고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데 미쳤다. 남자는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손이 멎었다. 틀림없이 응급상황이다. 심장이 미친듯이 고동을 친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외출복을 걸친 작은 소녀 한 명이였다. 소녀가 조용히 후드를 벗었다. 황갈색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작고 부서질 듯 가냘픈 몸에 눈빛만은 소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고 깊고 먹먹하다. 몸짓 하나하나가 고요한 울림을 준다. 역시, 여전히 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녕. 변한 게 없군.”
남자는 가까스로 입술을 벌렸다.
“당연한 소릴 하네. 당신도, 변한 게 없군.”
소녀가 살짝 웃었다.
“그래. 꼭 네 품에서 이 몸으로 처음 눈을 떴을 때처럼 말이야.”
남자는 눈시울이 차오르는 것을 애써 억누르며 소녀가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런 너절한 과거 얘기를 하려고 온 건가? 당신도 생각보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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