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틀비] 불가사의2

트리비아 사이드. 이어지는 동인설정

1873년 : 아이트호벤 서커스, 박쥐 날개가 달린 어린아이를 등장시켜 큰 성공을 거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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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기억은 조롱과 폭력이었다. 서커스단의 천막은 어둡고 비좁아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던가, 숨는 것이 쉬워졌다. 발치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열고 그 안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살을 짓이기고 목을 누르고 낮은 목소리로 겁박하고 학대하고 낄낄거리는 사람들로부터 숨는 것도 쉬웠고, 곧 다시 나타나 그들의 머리를 낚아채 바닥에 끌어박고 구두굽으로 밟아버리는 것도 쉬움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소녀의 등에 달린 박쥐 날개를 툭툭 건드리며 낄낄거릴 때, 그리고 옷 너머 살을 쓰다듬을 때마다 소녀는 그것을 반복했고 곧 몇 명 남지 않았다. 시간도 세상도 멈춘 그림자의 공간에서 트리비아라고 불렸던 서커스의 소녀는 아주 오래도록 홀로 숨었다. 그녀가 다시 그림자 밖으로 완전히 나온 것은 모두가 자신을 잊었으리라고 확신했을 때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달력의 앞글자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제 파이프 대신 종이로 말아 만든 담배를 피고 전화를 통해 서로 소식을 전했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세상 곳곳에 전구가 보급된 참이었다. 거리마다 색색의 불빛이 빛나고 사람들은 행복해보였다. 반짝거리는 거리에 홀로 선 까만 그림자의 소녀는 문득, 자신이 왜 숨어야 하는지 억울해졌다. 모두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졌다.

트리비아는 무대에 서서 워킹을 했다. 사람을 만나고 화보를 찍었다. 사람들과 만남을 갖고 섹스를 했다. 연합의 건설에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세상 온갖 것을 마음대로 누리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앳되고 눈에 신념이 굳으면서도 순수하게 웃는 안쓰러운 청년이 가지고 싶어졌다.

그에게 밀어를 속삭이고 키스를 하고 눈시울을 적시고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이던 동안 아, 시간은 왜 그렇게도 빠르게 흘러가는지. 시간이 흘러도 그림자에 속한 여자는 늙지 않고 트리비아 카리나는 슬슬 다시 숨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정담을 나누고 몸을 맞대며 그녀는 몇 번씩 나이들어 주름진 루이스의 옆에서 영원토록 젊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생각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숨는 것은 쉬울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세상은 그녀를 속박할 수 없다. 그림자 속에 모습을 숨겼다가 먼 시간이 흘러, 파란 머리의 루이스가 머리가 하얗게 새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때 즈음 먼 나라에서 새로운 이름 새로운 직업으로 지내면 그만이다.

생각의 끝에 그림자로 도망친 서커스의 소녀는 어둠을 세다가 결국 허황된 단꿈을 꾸고 만다. 나의 피난처에 그대가 있기를. 두 사람이 두 사람만의 공간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기를. 그래서 트리비아 카리나는 루이스에게 나타나 꿈결 같은 제안을 들려주고 밀어를 속삭이고 키스를 하고 눈시울을 적시고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이고, 끝없이 연속하는 이 생에서 그녀는 이제 숨을 수가 없다. 왜 당신은 세상의 영웅이어서 나를 세상에 속박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