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녀가 다가왔는지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 높은 힐을 신고 얼굴과 얼굴이 바로 마주치는 높이에서 눈꼬리를 살풋 접으며 웃음을 지었는지 이야기를 하다가 입술을 살짝 깨물어 핥았는지 숨이 닿을 듯 가까이서 이야기했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녀가 그 입을 열어 직접 말하기로는 사랑에 채인 내가 가여웠다고, 내가 이미 한 번 사랑의 허망함을 겪어 본 사람이기에 더 큰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었다고. 나는 그렇다면 당신은 대체 몇 번의 허망함을 거친 것인지 묻지 못한다.
저녁 나직한 전등 아래서 당신은 피다 만 담배 불똥을 크리스탈 재떨이에 몇번 팅기며 눈끝을 내리깔다가 그대로 비벼 끄고는 한다.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부드러운 비단 스카프로 이물질을 닦아내 주고는 한다. 내가 가진 적도 바란 적도 없었던 삶의 파편들. 나는 그녀가 어떤 과거에서 비롯했는지 아직 모른다.
모델이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전에 무엇을 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녀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적다. 당당히 사람을 대할 수 있는데도 사람을 피한다. 보통의 수줍은 처녀들이 낯을 가리는 것과는 다르다. 가끔 그녀는 나른한 오후의 창가에서 19세기의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읊는다. 의아한 눈을 하면 당신은 눈꼬리를 내려 진득히 웃고 나는 차마 무엇을, 왜, 어째서, 같은 접두어를 입에 올리지 못한다. 당신은 대체 언제 무엇을, 그러면 당신은 왜 나를, 당신은 나를 정말로… 따위로 이어지는 질문들은 머릿속에서만 검게 맴돌고 당신은 불안해 보이는 나를 위로하듯 끌어안는다.
정사 후에도 그녀는 공허하다. 무엇 하나 걸쳐 가리지 않은 몸인데도 당신이 저 검은 창 너머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나는 모른다. 박쥐 같은 그림자가 당신의 곁에서 피어오르고 매끄러운 등허리가, 얇은 팔이, 당신의 실루엣이 사라지며 검은 그림자로 점점이 화한다. 나는 저 그림자가 두렵다. 두려워 몸이 싸늘히 식고 결정이 파르르 맺히는 소리가 난다.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그녀는 밤처럼 까맣게 웃고 이내 그림자가 내 위로 드리워진다. 나는 눈을 감는다. 나는 이 그림자가 그녀를 삼켜버릴까봐, 아니, 나는 이 그림자를 사랑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