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틀비] 담배피는 트리비아 보고싶다

연합 능력자들의 틈바구니를 겨우 빠져나와, 지치고 상처입은 그들처럼 허름한 방이었다. 루이스는 거듭된 전투로 만신창이었고 트리비아는 필사적인 비행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것 같았다. 떨어져나간 가구는 널빤지로 대었고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새었다. 조명 불빛은 밝질 않고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깜박였다. 다행히도 침대는 두 개 있었는데, 한 쪽에서 트리비아 카리나가 벽에 등을 대고 짐짓 무심하게 걸터앉아 있었다. 루이스는 꽤 지쳤을 텐데도 긴장을 하는 티도 그렇다고 놓은 기색도 없이 자신 쪽으로 얼굴을 똑바로 향한 그녀가 완전한 화보 속의 모델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고마워요, 트리비아.”

“뭘. 감사 인사를 들으려고 당신을 구한 건 아냐. 아, 그렇다고 연합을 위해서 몸 바쳐 봉사한 것도 아니지만.”

“그럼 왜…”

“글쎄, 왜일까?”

그녀가 키득거리며 고개를 내리자 까만 곱슬머리가 어깨 위로 기울어져 내렸다. 그녀는 그대로 다리를 옆으로 돌리고 망사로 된 밴드 스타킹을 벗어내렸다. 일련의 동작 하나하나가 화보 속의 한 장면 같아 작품을 감상하듯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루이스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번쩍 일어났다.

“먼저 씻을게요.”

그녀는 대답 없이 박쥐 같은 눈동자로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홱 고개를 돌린다.

“저기, 트리비아?”

그녀는 고양이처럼 꼿꼿이 등을 세우고 방 구석의 탁자 위로 걸어갔다. 언제 챙겼는지 커다란 파이프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창문을 반쯤 열고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그래도 코끝에 매캐한 냄새가 돌았다. 마약에 취한 것 같았다. 루이스는 그대로 멍하니 물었다.

“담배를 피나요, 트리비아?”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어쩐지 부끄러워서 루이스는 등 뒤의 후드를 푹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예전에는. 모델은 때로는 사진 속에 담기기 위해서 별별 일을 다 해야 하거든. 하지만 건강에는 확실히 좋지 않아서. 사실 그렇게 취향도 아니고. 날개를 공개하고 런웨이에서 내려온 이후로 그만 뒀어.”

“사진을 찍기 위해서… 담배도 핀다고요?”

“응. 당신은 모르겠지… 하지만 아마 당신도 곧 알게 될 거야. 사람이 시선을 끌고, 정상의 자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해. 나 같은 모델에게는 나만의 특징적인 그림이, 패션을 완성시켜주는 아이템이 필요했지. 그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이 담배였어. 당신이 보기에는 어때, 루이스?”

“이제는 필요가 없겠네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멋진 날개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녀는 잠시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에서 파이프를 떼었다. 그러나 곧 다시 눈을 내리깔고 파이프를 입에 물고는 루이스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녀의 뒷모습 위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먼저 씻을게.”

그녀는 다시 런웨이의 모델처럼 빙그르 뒤를 돌고는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그런데 트리비아.”

어떤 것이 후회할 일일까? 어떻게 해야 지금의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앤지 헌트를 호위하면서, 홀든 가의 귀검사들을 만났을 때, 그리고 벨져를 단신으로 상대할 때 그는 수도 없이 자신에게 되물었지만 지금만큼 치열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한 번 잃었기에. 그만큼 더 조심스럽고 귀중했기에.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은 확실하게 알았다.

“런웨이도 아닌 지금, 취향도 아닌 담배를 지금 왜 다시 핀 거죠?”

이 순간 루이스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거나, 아니면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녀는 다시 파이프를 질끈 물었다. 지금 그녀는 확실히 시선이 끌릴 만큼 아름다웠다. 그는 이제야 파이프를 문 그녀의 내리깐 속눈썹이 떨어지는 모양과 그 위로 흩어지는 불빛 몽환처럼 흐린 연기 뒤로 모델의 근육이 긴장하는 모양을 볼 수 있었다. 낙후되어 깜박거리는 불빛 속에 연기가 한숨처럼 올랐다.

“있지, 루이스. 나는 나를 사랑해. 나는 자존심이 강한 여자예요. 그래서 남들이 끌어내리기 전에 정상의 자리에서 스스로 멈췄지. 애정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아.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 당신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일은 더 자존심이 상해. 그러니까 나는.”

 

작전에서 돌아온 후로 두 사람은 몇날 며칠을 같이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 짧은 며칠 동안 모든 것이 끝났다. 성도 없는 C급 능력자 루이스는 여왕의 수완에 의해 연합의 영웅이 되었다. 영웅은 빠르게도 여자를 얻는다는 소문 역시 같이 퍼졌다. 영웅과 정상의 모델. 미인을 얻은 영웅도, 한참 연하의 영웅을 낚아챈 미녀도 명예롭고 불명예로운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염문이 섞인 영웅담은 더할 수도 없이 화려해 부러움과 동시에 경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아는 사람들은 두 사람 다 참 무던히도 수줍다고 했다.

기도같은 고백과 기울어 떨리는 눈시울. 사랑하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루이스는 이미 한 번 사랑을 잃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 마음이 얼마나 중한지를 안다. 트리비아 카리나는 결코 누가 뭐라고 쑥덕거릴지 모르는 순진한 처녀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상관도 안하고, 신경도 아니 쓰고. 그 방 안에서는 내내 소곤소곤거리는 소리만.

낡고 허름하고 서로가 있어 아늑했던 방. 기도같은 고백과 기울어 떨리는 눈시울. 매콤한 연기에 그의 눈시울도 젖어들었다.

이 작은 세상 아래, 누군가를 진심 다해 사랑하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