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에자 출신의 젊은이들이 참여하면서 마케도니아의 전술 회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들은 이성적이면서도 열정적으로 즐기듯이 토론했고 다툼이 일어나거나 과열될 참이면 알렉산드로스가 능란하게 분위기를 풀었다. 사랑받는 왕자. 그를 믿고 신뢰하는 분위기가 젊은이들 사이에 있었다. 그럼에도 에우메네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주도하는 전술 회의가 썩 달갑지는 않았다.
회의 중 알렉산드로스는 간혹 현재 발언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볼 때가 있었다. 에우메네스는 그 눈에서 기울어진 유리 같은 불안정성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을 볼 때면, 마치 뱀이 몸 주변으로 축축한 비늘을 감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피식자를 물어뜯고 확인하는 것 같은 눈을 마주하는 것은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에우메네스는 부러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회의에서도 그렇게 몇 번의 눈짓이 오갔고, 회의가 슬슬 마무리되면서 소란스러워질 때 즈음 에우메네스는 주변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페르디카스가 일어서 있었고 레온나토스가 그 옆에 붙어 있으니 저들의 뒤로 슬쩍 빠져나가면 무사히 회의장을 나갈 수 있다. 에우메네스는 자리에서 슬쩍 일어났다. 하지만 마케도니아의 명지휘관도 미처 고려하지 못한 요소가 하나 있었으니, 알렉산드로스가 그의 움직임을 유의주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저기 이타카의 왕이 폴리페모스의 동굴을 탈출하시네.”
뭐야, 서기관님. 술자리에 참석하기 싫으신 겁니까? 그러시면 안 되죠~ 젊은이들 모두 한 마디씩 거들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이게, 에우메네스가 알렉산드로스가 주도하는 회의가 달갑지 않은 이유였다.
회의장은 어느새 난장판이 되었다. 멀쩡하게 대화하는 사람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적당히 말 상대를 해주면서 술을 홀짝이면 서기관을 취하게 해보겠다 오기를 부리는 젊은이들 몇이 그를 상대하다가 먼저 고꾸라졌다. 젊은이들의 본성을 관찰하기에 나쁜 기회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번이지. 상념에 젖어 다시 술잔을 다시 들이키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법 하는군.”
“전하.”
“술이 약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빠져나가려고 건가?”
“도서관에 필사를 부탁한 책이 오늘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거 특별한 날에 억지로 붙잡은 것 같아서 미안한걸.”
“꼭 오늘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저는 회의 후의 여가라면 술자리보다는 책이 좋아요.”
다소 건방진 대답이지만 왕자라면 이 정도 의견 표출로 화내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알렉산드로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자네는 무장보다는 지장, 아킬레우스보다는 오디세우스다 이거지.”
“전하. 전하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믿으십니까?”
전부터 신경 쓰이는 터였다. 필리포스 왕이 입버릇처럼 말했다. 알렉산드로스를 신화와 미신의 세계에서 떼어 놔야 해. 만약에 왕자가 그런 취급을 기분나빠하고 있다면, 술김에 나온 약간의 실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전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에우메네스. 오디세우스의 여로를 확인해 볼 생각은 없나?”
왕자가 취한 것일까 생각하는 동안 알렉산드로스는 에우메네스의 옆 자리에 앉았다.
“나는 지구(地球)의 저편을 말하는 거야.”
눈이 마주쳤다. 알렉산드로스가 눈썹을 휘며 미소를 짓자 뱀의 머리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뱀이.
“내가 거꾸로 묻지. 자네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모두 꾸며낸 얘기라고 생각하나?”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묘사는 과장되었을지라도 분명 영웅들의 묘사에 토대가 된, 실제의 영웅들이 있을 것이다. 용감무쌍한 아킬레우스, 현명한 오디세우스, 그 외 이름이 기록된 수천의 영웅들, 괴물이나 협력자로 묘사되는 이민족, 다른 문화, 여행…
“우리는 영웅이 될 걸세. 후대는 우리를 신화로 기억할 거야. 우리는 살아서는 지구의 저편을 보고 죽어서는 엘리시온에서 영원한 젊음을 얻어 쉬게 되는 거지. 낙원을 향해 동방으로 가자, 에우메네스.”
“엘리시온은 서쪽 끝이라고 나와있습니다만…”
“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지구가 둥글다면 방향은 상관 없지 않겠어?”
“네, 네.”
웃음과 웃음이 교차했다. 왕자는 에우메네스가 제의를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 것 같았고, 이번 젊은이도 한참 술을 마시다가 결국 에우메네스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타카의 왕은 폴리메포스의 동굴을 빠져나와 고향으로 향했다. 마케도니아의 독주를 물처럼 들이킨 것은 역시 무리였는지 책을 읽다가 술기운이 몰려와 자꾸만 어질어질했다. 기다리던 책이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읽으려고 애를 쓰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 뱀이 몸을 감았다. 뱀은 왕자가 되어 말을 타고 달려나갔다. 세계의 끝까지, 영원한 낙원으로.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에 잠이 깨었다. 숙취가 밀려와 윽, 하고 머리를 쥐고 어제 술자리에 어울렸던 것을 후회하면서, 비몽사몽간에 에우메네스는 생각했다.
그래, 당신은 그렇게 영원히 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