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크로우 암브러스트가 보기에 린 슈바르처는 이따금 어리석어 보였다. 아니, 어리다고 하면 좋을까? 고뇌 하나하나마다 흔들리고, 주변 사람의 고민마다 신경쓰고, 사소한 감정의 문제를 세계의 문제로 확대시켜버리는 그런 소년. 그리고 그는 그 어린 점을 사랑했었다.

크로우는 이따금씩 건넛방의 침대에서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옆의 체온에 밀착해 파고들었다. 그러면 웃으며 살짝 입을 맞춰주는 것이 좋았다. 네 옆에 머물러 있으면 나도 그 하염없이 순수한 세상에 잠겨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크로우는 린과 함께 지내며 헤픈 웃음을 짓고 한나절 내내 별 의미 없는 대화를 하고 실없는 농담을 하고 몸을 엮었다.

크로우는 간혹 린을 놀리길 좋아했다. 진지 군. 뭐 하나를 그냥 편하게 넘기는 법이 없어. 나처럼 좀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 보라고. 아직도 자신의 길을 찾는다고 헤매고 있는 거야?

“크로우, 남의 진지한 고민을 가지고 놀리면 안 돼.”

이런 고지식한 대답이 돌아오면 크로우는 저도 모르게 웃어버린다. 린도 마주 웃는다. 그러면 크로우는 아마 자신의 웃음도 돌아온 상대의 웃음만큼이나 애정으로 가득하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부끄러워 눈을 피하고 코를 살짝 꼬집는다. 아야, 아퍼. 아프라고 꼬집은 거야. 그리고 둘 다 웃어버렸다.

“그, 내 길 말인데. 바보같이 들릴지도 몰라. 그래도 나, 지금은 알 것 같아. 지금 나는……”

린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시선을 살짝 돌렸다. 그리고 쑥스럽게 웃으며 다시 크로우를 똑바로 보았다.

“네가 원하는 걸 이루어 주고 싶어. 네 꿈이 내 꿈인 거야.”

그 웃음이 너무 말갛고 예뻐서 크로우는 울 것 같은 기분이 되곤 했다. 그렇다는 건, 너에겐 곧 아무것도 없겠구나. 네가 좀 더,
바른 것을 사랑했다면 좋았을 텐데.

크로우가 가끔 그렇게 비어버린 얼굴을 했기에 린은 이유를 모르고 팔을 들어 크로우를 끌어안고는 했다. 어쩔 줄 몰라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린의 눈동자를 크로우는 빠져들 듯 들여다보면서 언제나처럼 실없는 웃음을 짓는다. 어리석고 어린 소년. 17살의 예쁘고 예쁜 소년. 눈동자가 맑고 순수하고 스쳐가는 바람에도 가슴 아파할 그런 고운 아이. 내가 오래 전 잃었기에 끊임없이 이끌리는 것.

그러나 언제나 물은 흐르고 소년은 자라고 우리는 머지않아 헤어지고 이 순간은 사라지겠지. 그러니 그저 기도할 뿐이다. 그리움이 다만 일방향으로 흐르기를. 훗날에는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를. 그래도, 적어도 지금만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바람이 심장 옆 구석을 쳐서 청년은 다시 소년에게 입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