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서 내린 지 한참이건만 아직까지도 어지러워 현기증이 났다. 익숙하지 않은 승마의 멀미이거나, 아니면 바레아하트라는 도시 자체가 숨을 막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7반에서 지내면서 상상도 못할 여러 일이 있었다고는 하나 칼 레그니츠의 아들인 자신이 귀족의 도시에 정식으로 초대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내내 몸이 간지러웠다. 고귀한 귀족의 저택이라고 온몸으로 주장하는 듯한 자수 놓은 융단이나,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용인들과, 멀리에서 수군거리는 메이드들의 말소리조차 저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옆에 동행하고 있는 남자였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는 거지? 나를 망신줄 셈인가? 품위 없군, 마키아스 레그니츠.”
“으……, 뭘 거들먹거리고 있는 거냐! 네 녀석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런 곳에 올 이유 따윈 없었어!”
“나라고 이런 상황을 예상한 바는 아니니, 더 이상 언성을 높이는 추태는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네가 정돈되지 못한 모습을 보일수록 저들에게 기회를 주고 너와 나의 입지만 좁아질 뿐이다.”
그래, 옆에 있는 유시스 알바레아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귀족 같은 도련님이었다. 대체 왜 지금까지 같이 지내게 된 걸까? 새삼스레 두드러기가 날 것 같건만 은근히 바른 말만 하는 녀석이라 더 대꾸할 말도 없었다. 흥분한 뺨만 벌겋게 달아오르고 잔뜩 오른 열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창문이라도 벌컥 열고 싶었다.
“참, 그래.”
유시스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렸다.
“그것, 저택의 응접실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눈앞에 하얀 손바닥이 올라왔다. 질겁해 뒷걸음질 칠 만도 한데, 이상하게도 전혀 저항할 의지가 들지 않았다. 시야가 뿌옇게 되었다. 안경은 아마 유시스의 손에 들려 있는 듯하다.
“이봐, 나 시력이 별로 좋지 않은데…….”
“그래도 내 모습은 보이겠지. 가까이 있잖아.”
“그야 그렇지.”
“걱정 마라. 내가 곁에서 신경 써서 안내해 줄 테니. 왜, 내 안내는 역시 믿지 못하겠나?”
“아니…….”
부연 시야에 반짝거리는 금발이 눈에 띄고 낮은 목소리가 유독 또릿하게 들렸다. 숨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뜨뜻미지근한 온기가 바로 곁에 느껴졌다. 작게 웃는 숨소리가 뺨에 닿는 것 같다.
“역시 벗은 쪽 얼굴이 보기 낫군.”
역시 열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그것이 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