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수위 있어요. 으음 일케 써도 린크로 맞겠지…? 내용이 좀 노답합니다…..
***
눈을 떴을 때 앞엔 까맣게 짙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하얗고 곧은 이마와, 감은 눈꺼풀과, 둥근 어깨가 보였고 체온 때문에 더웠다. 크로우는 슬그머니 웃었다. 린은 피곤했는지 아직도 곤히 자고 있었다. 일부러 깨우지는 말아야지. 이불을 살며시 들고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침대를 나왔다. 숨죽여 문고리를 돌리는데 이상하게도 긴장이 됐다. 다행히도 큰 소리 없이 방을 나서려는 찰나,
“또.”
등 뒤에서 팔목을 잡혀 크로우는 그대로 벽에 반쯤 내동댕이쳐졌다.
“어딜 가려는 건데.”
“아니야. 목이 말랐을 뿐이라고.”
“그런데 왜 그렇게 발소리를 죽여?”
“네가 이럴 줄 알고 있었으니까!”
소리를 치자 린이 섬칫했다. 크로우는 혀를 찼다. 집착하는 건 이 녀석인데,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냔 말이야.
“하지만, 난, 크로우…….”
린의 손끝이 허공에서 오갈 데 없이 떨리고 있었기에 크로우는 일단 그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그리고 한심한 후배를 품에 끌어안았다.
“린, 나는 여기에 있어. 느껴져? 호흡도 하고 있고, 심장도 뛰고 있고, 제대로 살아 있다고.”
손의 떨림이 겨우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에.”
속삭이고 고개를 숙여 입을 두어 번 스치듯 맞추었다.
‘가볍게 끝날 리 없지.’
가벼운 후회가 일 듯 했으나 곧 그런 생각을 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기회를 잡은 후배 녀석의 혀가 입안을 헤집다가 쇄골까지 내려와 가려워 죽을 것 같았다. 린은 이제 크로우가 민감한 부분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파악해 버렸다. 쇄골, 귀 아래, 그리고 배 위에 더운 숨이 닿을 때마다 그냥 얌전히 있을 수가 없었다.
“린…….”
크로우가 반쯤 풀린 눈으로 웃었다.
“이쯤이면 된 것 같아.”
그리고 허벅지를 대었다.
***
“나도 잘 이해가 안 가. 우리는 고작 일 년 알았잖아. 나는 너를 만나기 전에도 십칠 년을 살았고. 그런데 네가 없었던 그 잠깐이…….”
린이 눈앞에 있는 크로우를 끌어안았다. 아주 구석구석 맞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기세였다.
“죽을 것 같았어.”
“그래, 그래.”
크로우는 가만가만 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린이 불안해하는 게 아주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나는 죽었었으니까.’
“그런데, 겨우 되찾았더니 또 도망치려고 했지. 안 돼. 팡타그뤼엘에서 발칸과도 약속했다고.”
“인마, 그거랑 이렇게 밀착해 다니는 거랑은 좀 다른 얘기 아니냐.”
“하지만 불안한걸……”
“그러지 마. 그때는, 내가 너한테 짐만 될까봐 그랬지. 내가 없다고 이렇게 불안해할 줄은 몰랐다고. 안심해.”
“그렇지만 역시, 내가 잠깐 눈을 떼면 사이 또 사라질 것 같아 보여서……”
“나를 대체 뭘로 보는 거야.”
크로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좋아해, 린. ”
그러자 린이 배시시 웃었기에 크로우는 잠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이 애는 이렇게나 순진해서 사랑스럽다. 거짓말은 크로우가 열 살 이후 평생 해온 것이라 자신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눈앞에서 본 죽음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불안해하는 린이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크로우는 린의 상태가 괜찮아지는 대로 다시 어딘가로 떠날 셈이었다. 지금 이대로는 발목을 잡는 셈밖에 되지 않는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린의 등을 토닥이면서 크로우는 몇 가지 가능성을 상상해 보았다. 결사에 가서 비타를 돕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줄라이로 가서 할아버지의 묘소를 찾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아니면, 아예 제국 외곽의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는 산골에 가서 조용히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미래를 상상해도, 어떤 배경 속에 있어도 결국에는 눈앞에 있는 이 애가 또 쫓아와주는 모습을 기대해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