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_미카슈 주제 : 모순
NTR, 앵스트, 약간의 수위성 주의. 커플이 아닌 것 같지만 마음의 눈으로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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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들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어들은 늘 비슷했다. 아름답고, 인간을 쉽게 사랑하고, 세상에서 금방 사라져버린다. 미지근한 물을 채운 욕조에 손을 담그고 슈의 하얀 살결을 닦아내면서 미카는 이야기 속의 인어들을 떠올렸다. 세상이 그리운 듯, 세상을 떠날 듯 야트막한 물 속에 잠겨 지느러미를 꿈틀대는 인어들. 뽀그르르. 욕조에서 포말이 일었다. 민감한 부위 안쪽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긁어내자 슈가 읏, 하고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제지하지는 않는다. 미카는 허벅지 안쪽의 붉은 자국 위에 비누를 대고 문질렀다.
“안 지워지네.”
“쯧. 웬만하면 자국은 남기지 말라고 했는데…….”
“이번 남자랑은 오래 안 만나는 게 낫겠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응, 스승님이 알아서 하겠지.”
스승님은 완벽하니까. 미카가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자 슈가 문득 가려운 듯 물 속에 잠긴 다리를 꼬았다. 지느러미를 꿈틀대듯이. 아름답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주고 세상에서 금방 떠나버리는 인어들. 미카는 손에 꽃 향기가 나는 거품을 묻혀 남은 정사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닦아내었다. 혹여나 거칠게 만지면 당신의 비늘이 상할까, 정성스러운 손길로 닦아내었다.
이츠키 슈가 느닷없는 커밍아웃을 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나는 남자가 더 좋아. 헤에, 그랬구나. 미카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사람을 만날 거다. 공개연애를 한다는긴가? 아이돌 활동은?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슈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섹스하고 싶은 거야.”
이츠키 슈는 보통 아홉 시에서 열한 시 사이에 나가서 열두 시가 되기 전에 들어왔다. 가끔은 한시나 두시까지 늦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카게히라 미카는 사탕을 씹거나, TV를 보고 청소를 하면서 새벽을 샌다. 심야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각없이 웃다가, 벨이 울리는대로 현관으로 달려가서 벌컥 문을 열면 선글라스를 쓰고 화보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슈가 문앞에 있었다. 미카가 손을 내밀면, 슈는 미카의 부축을 받고, 꼿꼿이 서 있던 품새가 곧바로 무너진다.
“무리한 거 아니가?”
“…친구와 같이 오겠다는 제안이 와서 받았는데. 지독했어.”
“싫으면 안 받으면 되잖나.”
“싫지 않으니까 받은 거다.”
아니, 하고 싶었으니까 받았지. 미카는 더 말하지 않고 욕실 불을 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몸의 이츠키 슈가 따라들어온다. 욕조에 받아둔 물에 첨벙, 주저앉은 슈가 몸을 늘어뜨리고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화나지 않아, 카게히라?”
“윽, 냄새……. 스승님, 술 마셨나? 어쩐지 오늘따라 더 늦더라.”
“같은 그룹 멤버인데 밤마다 섹스하러 다니고. 그것도 매번 다른 남자들이랑. 기분나쁘지 않냐고.”
“이상한 소리네. 고등학생 때도 말했던 것 같은데. 스승님이 어디서 뭘 하든, 나한테 스승님은 최고다. 천재고, 완벽이고,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사람이다.”
“남의 흔적을 닦으면서 그런 소리가 나와?”
“그런 건 상관없대도. 어쨌든 우리 스승님이잖아.”
슈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 너는 내가 남자를 좋아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지. 난 그래서 무서웠어.”
“스승님 말은 고등학생 때도 그랬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스승님 일에 따지고 들 수는 없잖나? 그치만, 스승님 몸 걱정이 되긴 해. 요새 너무 험하게 하는 것 같은데, 좀 쉬면 안 되나?”
“해도해도 채워지지 않아서 그래.”
“으응, 그럼 스승님이 알아서 하겠지.”
슈는 눈살을 찌푸렸다. 뜨거운 물을 채운 욕실이 온통 더운 증기로 텁텁해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일어나서 대충 몸을 닦는데, 미카가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스승님,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기다.”
그날 밤 침실에는 파자마를 입은 미카가 쿠션 몇 개를 들고 나타났다. 헐렁한 파자마 자락을 팔락거리며 몽실몽실 솜이 빵빵한 쿠션을 슈의 몸 주변에 잔뜩 가져다 놓는다.
“지금 대체 뭐 하는 거냐?”
“오늘의 스승님은 왠지 혼자 둘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미카는 슈의 옆에 털썩 드러누웠다.
“괜찮지, 스승님?”
“괜찮아.”
등 뒤에서 금방 잠든 미카가 색색 뱉는 숨이 닿는 것을 느끼며, 슈는 계속 주문처럼 되뇌었다. 괜찮아. 지금 이대로 괜찮아.
다음 날은 모처럼 스케쥴이 없는 날이어서 아침부터 청소를 했다. 이불빨래를 하고, 비누거품을 내서 욕실을 닦고, 서로 장난으로 거품을 얼굴에 묻히다가 웃어버리고, 같이 손을 잡고 청소기를 돌리고, 노곤노곤하게 지친 밤에는 배달음식을 시키고서 TV에 나오는 고전 로맨스 영화를 틀고. 귓가에 샹송이 들리고 흑백 화면의 불빛이 얼굴 위에 아른거리는 동안 미카가 오늘은 나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슈가 쿠션을 끌어안은 채 대답했다.
“오늘은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씩 웃자 미카가 영문을 몰라 혼란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바보처럼 헤헤 웃는다. 뺨을 살짝 꼬집자 입술을 삐죽이다가도 뭐가 그리 좋은지 곧 다시 하얗게 웃는다. 지직거리는 TV화면이 미카의 웃는 뺨 위에 아롱거리는 것을 보며 슈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실은 나는 연애도 섹스도 필요없었던 거지. 너의 몇 번의 눈길, 몇 번의 손길. 사실은 그거면 넘치고도 남아서 울고 싶었던 거지. 그리고 난 그게 무서웠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