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안즈

단챠5성기념 리퀘 중 에이안즈입니다!
휘두르는 에이치와 마주 서는 안즈의 배틀노말이 좋은 느낌입니다.

***

안녕, 안즈쨩,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 안색이 썩 좋지 않구나. 역시 너는 지나치게 무리하는 것 같아. 최근에 준비할 드림패스라도 있었던가? 미안해, 학생회장인데도 아직 비공식 드림패스는 전부 파악하지 못했거든. 아니면 역시 그 표정은 나 때문인 걸까. 나는 상대하기 거북한가? 그렇다면 조금 서운하구나. 나는 안즈쨩과 좀 더 친해지길 바라고 있거든. 어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함께 차라도 한잔 하겠어? 때마침 학생회실도 비어 있단다.

“괜찮습니다.”

안즈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르게 거절했다. 학생회장쯤 되는 사람을 대하기에는 너무나 미련 없는 태도라 나무라는 말이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안즈쨩은 꼭 겁 먹은 토끼나 경계하는 사슴 같네. 긴장 좀 풀어,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사자가 아니라 텐쇼인 에이치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그게 사자보다 무서운걸요, 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저도 모르게 입을 내밀고 볼을 푸우 부풀렸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며 에이치는 깃털처럼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응……, 그게 싫은 거구나. 그래도, 한 인간으로서의 텐쇼인 에이치가 조금은 너에게 전달되었을 거라 생각했어. 분명 너는 프로듀서고, 나는 네게 내 무대를 보였으니까. 하지만 나답지 않게 속단했던 모양이야. 역시 혁명가 소녀에게 fine의 무대는 지나치게 지루하고 고답적이었던 거지.”

“아니에요.”

이번 대답은 아까보다도 한층 더 빨랐다. 격렬한 부정이었다. 곧이어 얼굴이 달아오르는 속도도 대답하는 속도 못지않았다. 과연 명석한 소녀라, 안즈는 이미 들킨 표정을 숨기려 애를 쓰는 대신 빠르게 상대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선배 때문이잖아요. 왜냐하면 선배가, 당신이, 왜…….”

끝까지 똑바로 이어지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말끝을 에이치가 낚아챘다.

“왜 내가 계속 너를 보고 있었다고 생각해?”

물끄러미 응시하는 파르란 눈빛이 미동조차 없이 서늘했다. 얼마 전 공연에서 저를 바라보던 시선과 꼭 같아서 안즈는 꿀꺽 침을 삼켰다.

무대 아래에서 지켜보는 관객은 본래 공연자의 시선까지는 캐치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관객 본인이 공연가의 시선을 받고 있는 당사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에이치가 간주에서 목소리 끝을 늘어뜨리며 응시하는 시선, 몸 상태를 고려해 짤막하게 넣은 안무의 끝에 향하는 고갯짓의 방향, 무대를 오르고 무대에서 내려오며 위치를 확인하는 눈짓까지 전부가 관람석의 안즈를 내내 곤혹스럽게 했다.

“그걸 알았다면 왜냐고 묻지 않았어요.”

에이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턱을 괸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나도 그 애들 이상으로 너에게 인정받고 싶었단다, 안즈쨩.”

긴 금발머리가 눈앞에 매끄러져 안즈는 눈을 세게 깜박였다.

“어찌됐든간에 너는 이 학원의 유일한 프로듀서니까 말이야.”

“그러면 거리를 지켜 주세요. 프로듀서에게 예의를 지켜 주세요.”

안즈는 어느새 바짝 다가온 에이치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빠르게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부쩍 귀 가까이서 들리는 목소리에 발이 멎고 말았다.

“하지만 안즈쨩. 그 애들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않잖아.”

숨이 귀에 닿는 것 같다. 바로 뒤를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 닿을 것만 같았다. 아니, 과대망상이야. 안즈는 침착하게, 천천히 뒤돌아 보았다. 숨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하이얀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길고도 짤막한 침묵의 끝에 에이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나는 질투하고 있는 거야. 구애하고 있는 거지.”

결벽적으로 창백해 천사 같은 남자의 열렬한 어조와 말의 내용에 그만 머리가 새하얘졌다. 거절한다. 거절해야 한다. 그것만을 겨우 생각해내고 입을 여는 찰나 에이치가 검지를 들어 안즈의 입 앞에 가져다 대었다.

“이 학원의 한 명의 아이돌로서, 유일한 프로듀서에게 말이야.”

완전히, 휘둘리고 있었다.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위세가 꺾였다고는 하나 상대는 이 유메노사키 학원에 군림하는 절대군주다. 여기서 흐트러지고 얕보여서야 트릭스타의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다, 라고 생각하며 안즈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입술을 열었다.

곧이어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스스로 놀랄 만큼 형편없었다. 물기가 어려 완전히 토라진 어린애 같았다.

“나를 놀리고 있는 거죠?”

에이치는 잠시 대답 없이 안즈의 얼굴을 수 초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파란 눈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순수한 환희나 승리감 같은 것이 눈빛에 그득해 아이처럼 장난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아이처럼 잔혹해 보이기도 했다.

“드디어 내 앞에서도 이런 표정을 하는구나.”

곧 에이치는 눈을 반 접어 실없이 웃었다.

“말했잖니. 긴장 좀 풀라고. 나는 지금 정말로 기뻐, 안즈쨩. 이제 토끼처럼 경계하지 않는 거지?”

좀 전까지의 표정이 거짓말인 것처럼 텐쇼인 에이치는 천사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아이처럼 하이얗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 표정에 안즈도 그만 그대로 맥이 풀리고, 웃음이 날 듯 가슴께가 두근대어,

아. 그러니까 그 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한 시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