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소년

어려서 머리가 여물지 못하고 몸도 작았던 시절에, 훨씬 더 자그마한 새를 주운 적이 있다. 싸늘한 바닥에서 가냘픈 날갯죽지를 몇 번이고 파닥거리던 아기 새는 조금도 공중에 뜨지 못하고 마침내 바닥에 머리를 떨어뜨렸다. 린은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자그마한 생물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드러난 배 위에 손을 살짝 대니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숨이 느껴졌다.

불편한 연회를 견디다 못해서 슬쩍 테라스로 빠져나온 참이었다. 연회장에 이 새를 들고 가서 도와달라고 하면 비웃음을 사겠지, 비난받을 짓을 한 거지. 나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새는 도와주어야만 한다. 어쩌지도 못하고 두 손 안에 새를 꼭 쥐고서 찾아간 예배당에서 시스터가 말했다.

“어미에게서 떨어져서 며칠은 방치된 모양이에요. 날개도 많이 상했네요. 좀 더 따뜻한 곳에서 돌보고 지켜봐야 예후를 알 것 같은데, 돌볼 사람이 있을는지 걱정이네요.”

“그러면 제가 집에서 돌볼게요. 새가 날아가는 게 보고 싶어요.”

“이 애가 날 때까지 회복하고 자라려면 못해도 보름은 걸릴 거예요.”

“괜찮아요. 제가 계속 지켜볼게요.”

“도련님이 지나가는 생물에 이렇게 애착을 갖다니 별일이네요. 예배당 여자아이들이 보면 질투하겠어요, 후후.”

“그냥, 날아가는 게 보고 싶을 뿐이에요.”

“네. 그게 문제라면 문제겠네요.”

시스터는 아기 새를 볼 때와 꼭 같은 눈빛으로 어린 린을 내려다보았다.

“한 생명을 길들인다는 일은, 생각보다도 더 무겁답니다. 새가 날지 못할 수도 있어요, 만약의 얘기지만요. 날아간 후에는, 걱정되기 시작할 거예요. 이미 사람 손을 탔는데 바깥에서 괜찮을까, 폭풍을 만나 떨어지지는 않을까. 그래도 정을 주실 건가요? 그리워하고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때, 어떻게 대답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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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언어

장미향기가 잔뜩 났어요. 아주 코를 찌를 지경이었죠.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꽃에 둘러싸여 차 마시기를 좋아하시니, 장미를 산더미처럼 쌓아 보았습니다. 그것도 가장 좋아하시는 흰색 장미를 하얗고 하얗게 쌓았어요. 그런데 도무지 기분이 좋아지실 기색이 보이지 않으니 이상하죠.

아, 이제 황제 폐하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으려나요? 에이치는 학원을 졸업했으니까요. 그리 오래 지난 일도 아니군요. 결코 잊지 못할 졸업식이었죠. 졸업식의 마지막 공연은 물론 학원 정점인 우리 「fine」이 맡았습니다. 아아, 「fine」의 「마지막」이라니 이 얼마나 유쾌하고 영광스러운가요?

귀여운 토리는 분명 자신이 어떻게 해야 사랑스러워 보이는지 알고 있어요. 제법 영악한 아이입니다. 작은 몸에 하얀 유닛복을 앙증맞게 걸치고 발을 구르고, 보는 사람이 웃음 짓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애교를 부리죠. 그날은 특히나 천사처럼 사랑스러웠답니다. 주인이 힘을 잔뜩 냈으니 원래도 완벽한 유즈루야 말할 여부가 있겠습니까?

물론, 이 히비키 와타루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요. 무대에 입장할 때마다 탄성과 환호를 듣는 일에는 익숙해진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네, 확실히 그날의 공기에는 평소의 무대보다도 더 뜨겁고 애태우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지막 주인공의 등장입니다.

팡파르 속에서 황제 폐하가 천천히 허리 숙여 인사했을 때, 거짓말처럼 환호성이 멎고 모두가 숨을 죽였어요. 에이치는 천사 같았어요. 너무 상투적인 표현인가요? 하지만 이건 정말이랍니다. 갓 하늘에서 내려와서, 금방 다시 올라가 버릴 것 같은 천사요. 희끄무레 웃는 에이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고 그 어느 무대에서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이것만은 제가 살아온 세월을 걸고 확언할 수 있겠군요.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공연이었습니다.

황제는 무대에서 쓰러졌습니다. 의식을 잃은 학생회장이 병원에 실려가는 동안 졸업식은 끝났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꿈의 학원도, 한단지몽도, 무지갯빛의 서커스도 모두 끝났고 지금은 모라토리엄입니다.

그래도 아직 유예기간이 조금 남았죠. 원하던 대로 무사히 졸업을 했고, 거기에 조금 더 시간이 남았는데 왜 그리도 심통이 난 채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전혀 모르겠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광대가 풀이 죽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에이치는 한 송이를 들고 장미 향기를 맡는 듯 얼굴을 가져다대더니 주먹을 쥐어 손에 쥔 꽃잎을 우그러뜨려버리더군요. 그리고 내던졌습니다.

“꽃이 마음에 차지 않나요?”

“응.”

참, 별일입니다. 곧 쓰러질 듯 아플 적에도 언변은 유창했던 우리 폐하가 아닙니까? 그런데 짧은 단답에 입조차도 꾹 닫고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광대는 광대의 일을 하고, 폐하가 꽃이 성에 차지 않으신다면 성에 찰 만한 것을 가져와야죠.

그래서, 특히나 향이 빼어나고 눈에 띄게 아름다운 장미를 대령해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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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night Blues

1. 십년 전, 저무는 저녁

밤이 되면 오는 것들이 있다. 어둑어둑 검게 지는 땅거미, 구름을 비추는 달, 멀리 야산에서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와, 헤드라이트를 켜고 경적을 울리며 몰려다니는 오토바이, 반짝이는 별무리, 풀잎 위에 맺히는 이슬, 그리고 형. 형은 늘 밤에 왔다.

별들이 하나둘씩 눈을 뜨는 밤이면 어린 리츠도 반짝 눈이 뜨였다. 오늘 밤엔 형이 올까? 어둑어둑한 창가에 기대어 숨을 죽이고 문틈에 가만 귀를 기울이면 온갖 소리가 귓전에 부딪힌다.

건넛집 여자아이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좀 더 떨어진 곳에서 나이프가 사기그릇에 부딪히는 소리. 수레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나, 산기슭에서 새앙쥐가 짚단을 파먹는 소리와 귀를 긁는 모든 자잘한 소리들을 지나서 다시 방 안에는 제 작은 숨소리뿐. 기다림에 지쳐 리츠는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럴 거면 차라리 밤에도 잠들었으면 좋았을걸.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시체처럼 방바닥에 누워, 한참을 눈만 깜박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들끼리 서로 대답하듯 울음소리는 점점 크게 뭉쳐 화음이 되고, 그에 섞여 야산의 늑대 짖는 소리까지 울린다. 그때가 되면 리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홀린 듯 문을 열고 집을 나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타닥타닥. 천천히 옮기던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 곧 아이는 날 듯이 밤거리를 내달리고 있었다.

개 짖는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가슴도 발걸음 못지않게 빠르게 뛰었다. 어둑어둑 저물어가는 저녁, 저 멀리 우글거리는 개들의 그림자가 보이고, 그 가운데 검푸른 옷자락으로 몸을 감싼 밤의 왕. 형은 늘 밤에 개들과 함께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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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향기 나는 당신의 미소에

“나는 오래는 못 살아. 잘해야 스무 살?”

그렇게 말하자 늘 그림같이 웃고 있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반짝이는 금발에 그늘이 지고 상냥한 눈웃음도 멎었다. 늘 휘장처럼 드리우고 있던 해사한 웃음을 잃은 로네의 얼굴은 석고상처럼 파르라니 생기가 없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회복할 시간을 줄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 로네 펠트너. 네가 차기 리더감인 것도, 그래서 학교의 모든 아이들과 잘 지내려는 것도 알겠어. 하지만 나는 거름회수팀이 될 생각도 없고, 설령 되더라도 열심히 일할 생각도 없어. 이래서야 금방 잘리고 끝이겠지.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찾으러 다닐 필요 없다고.”

쏘아붙이고 뒤돌아 떠나는 찰나, 무언가가 옷자락을 잡아당겨 딜마는 그만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찔, 균형을 완전히 잃었다가 곧 묘하게 폭신한 것 위로 떨어지는 감각. 딜마를 품에 받아 안은 로네가 얼굴을 닿을 듯 내려다보며 천진하게 웃었다.

“역시, 딜마. 내 파트너가 되어 줄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나는 회수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뭣보다, 머지않아 죽을 거라고. 그런데 파트너라니. 동정인가? 오만인가? 어느 쪽이든 받아들일 수 없으니 화가 솟구치는 것이 먼저였다. 딜마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해 못 했어? 나는 시한부야. 스물도 못 돼서 죽을 거야. 지위든 권력이든 가지려 애를 써도 아무 의미 없다고!”

“하지만 알잖아, 딜마? 여기 있는 누구도 네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거. 늘 그런 눈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잖아.”

차마 부인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자 로네는 샐쭉 웃었다.

“그러니까 함께 일하자. 어차피 누구라도 언젠가는 죽을 거, 함께 최고의 마지막을 맞으면 되잖아? 있지, 딜마……. 나도 남한테 쉽게 말 못할 비밀이 하나 있거든. 네가 비밀을 알려줬으니까 나도 하나를 알려줄게. 어때, 괜찮지?”

아는 누군가가 시한부라는 사실은 그저 알기 부담스러울 뿐이다. 결코 ‘비밀을 알려주었다’고 표현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로네는 그 단어를 또릿하게 발음하며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귓가에 속닥거렸다. 귀에 소곤소곤 닿는 숨이 간지러워 딜마는 손끝이며 발끝을 움찔 움츠렸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나지막했다.

있잖아, 딜마. 나는, 우리 집은 말이야, 사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