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언어

장미향기가 잔뜩 났어요. 아주 코를 찌를 지경이었죠.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꽃에 둘러싸여 차 마시기를 좋아하시니, 장미를 산더미처럼 쌓아 보았습니다. 그것도 가장 좋아하시는 흰색 장미를 하얗고 하얗게 쌓았어요. 그런데 도무지 기분이 좋아지실 기색이 보이지 않으니 이상하죠.

아, 이제 황제 폐하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으려나요? 에이치는 학원을 졸업했으니까요. 그리 오래 지난 일도 아니군요. 결코 잊지 못할 졸업식이었죠. 졸업식의 마지막 공연은 물론 학원 정점인 우리 「fine」이 맡았습니다. 아아, 「fine」의 「마지막」이라니 이 얼마나 유쾌하고 영광스러운가요?

귀여운 토리는 분명 자신이 어떻게 해야 사랑스러워 보이는지 알고 있어요. 제법 영악한 아이입니다. 작은 몸에 하얀 유닛복을 앙증맞게 걸치고 발을 구르고, 보는 사람이 웃음 짓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애교를 부리죠. 그날은 특히나 천사처럼 사랑스러웠답니다. 주인이 힘을 잔뜩 냈으니 원래도 완벽한 유즈루야 말할 여부가 있겠습니까?

물론, 이 히비키 와타루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요. 무대에 입장할 때마다 탄성과 환호를 듣는 일에는 익숙해진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네, 확실히 그날의 공기에는 평소의 무대보다도 더 뜨겁고 애태우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지막 주인공의 등장입니다.

팡파르 속에서 황제 폐하가 천천히 허리 숙여 인사했을 때, 거짓말처럼 환호성이 멎고 모두가 숨을 죽였어요. 에이치는 천사 같았어요. 너무 상투적인 표현인가요? 하지만 이건 정말이랍니다. 갓 하늘에서 내려와서, 금방 다시 올라가 버릴 것 같은 천사요. 희끄무레 웃는 에이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고 그 어느 무대에서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이것만은 제가 살아온 세월을 걸고 확언할 수 있겠군요.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공연이었습니다.

황제는 무대에서 쓰러졌습니다. 의식을 잃은 학생회장이 병원에 실려가는 동안 졸업식은 끝났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꿈의 학원도, 한단지몽도, 무지갯빛의 서커스도 모두 끝났고 지금은 모라토리엄입니다.

그래도 아직 유예기간이 조금 남았죠. 원하던 대로 무사히 졸업을 했고, 거기에 조금 더 시간이 남았는데 왜 그리도 심통이 난 채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전혀 모르겠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광대가 풀이 죽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에이치는 한 송이를 들고 장미 향기를 맡는 듯 얼굴을 가져다대더니 주먹을 쥐어 손에 쥔 꽃잎을 우그러뜨려버리더군요. 그리고 내던졌습니다.

“꽃이 마음에 차지 않나요?”

“응.”

참, 별일입니다. 곧 쓰러질 듯 아플 적에도 언변은 유창했던 우리 폐하가 아닙니까? 그런데 짧은 단답에 입조차도 꾹 닫고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광대는 광대의 일을 하고, 폐하가 꽃이 성에 차지 않으신다면 성에 찰 만한 것을 가져와야죠.

그래서, 특히나 향이 빼어나고 눈에 띄게 아름다운 장미를 대령해 본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전부 알아듣지 못하겠어요, 히비키 선배. 아무튼 텐쇼인 선배가 이 저택에 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이걸 저택이라고 할까요, 병원이라고 할까요? 당신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부른 거죠? 텐쇼인 선배의 상태를 보러 와 달라, 는 말은 들었지만 왜 하필 저인지…….”

“아아, 학원의 모두가 곤란할 때 부르는 사람이라면 응당 프로듀서인 당신 아니겠습니까? 우스운 이야기기는 하네요! 이제 저는 학원의 학생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아직은 그 끈으로 이곳에 남아있답니다.”

“……선배는 가끔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해요. 아무래도 좋아요. 그래서 저는 간병을 하면 되나요?”

“당신답지 않게 뾰족한 태도로군요. 병적으로 남을 돌보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만! 혹시 하기 싫은데 억지로 온 겁니까?”

“……아뇨. 단지, 의문이 들어서. 전문 간병인이라면 텐쇼인 가문의 재력으로 고용할 수 있을 테고, 말벗이라면 저보다는 하스미 선배가 좋겠죠. 하스미 선배는, 요즘도 많이 바쁘신 걸까요?”

“케이토는 화가 나 있어요. 에이치가 입원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전문적인 설비가 있는 곳에서 치료받는 쪽이 승산이 있으리라 믿는 거죠, 딱하게도.”

“그건 저도 동의하는데요. 텐쇼인 선배는 떼를 쓰는 어린애도 아니잖아요. 냉정하게 가능성을 따져봐야 하지 않나요?”

“글쎄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죽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비극 아니겠습니까.”

장미 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보는군요. 오랜만이라고 몰라볼까요, 그녀가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할 때의 눈빛입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텐쇼인 에이치는 꼭 어떤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 같습니다. 저는 그래도 에이치라면 의연하게 이 시간을 맞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에게는 사람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습관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도 힘든 거겠죠.”

“그 사람은,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아아,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니 이 저로서도 당황하고 만 것이죠! 하지만, 당신은 기적의 프로듀서가 아닙니까? 하하, 그런 표정 하지 마시고요. 분명히 인간은 히비키 와타루와 그 외의 사람으로 나뉩니다. 그러나 당신은 제3의 분류에 있는 것 같은 사람이니까요. 마음의 간병을 부탁할 사람이라면 당신 외에 따로 생각나지 않는군요.”

“과찬이에요. 그저 우연히 모두가 저를 좋아해 주었을 뿐이고…….”

“우연의 일치라,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서로 적대하던 사람들이 당신에게 이끌려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던 수백 수천의 우연. 우연이 그렇게 겹치고 또 겹치는 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은 신이라고 하죠! 이런, 당신은 저보다도 상위의 존재로군요.”

“……휴. 됐어요. 더 이상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잊어버릴 것 같아. 그래서, 텐쇼인 선배는 어느 쪽에 있나요?”

“물론 안내해드리죠. 무도회로 공주님을 모시는 안내인처럼, 정중하게. 따라오겠습니까?”

무도회라고 말은 했지만 이곳이 과연 무도회일까요? 전학생 씨는 이런 모습의 에이치를 보는 건 처음일 텐데요. 그래도 에이치가 설마 이 장미마저 내던지기야 하겠습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기, 히비키 선배.”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전학생 씨는 제 뒤를 따라오지 않고 꼼지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저……, 잠시만요. 준비를 할게요. 저, 텐쇼인 선배는 아직도 조금 무서우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장미는 작게 웃었습니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어깨를 움츠리고 팔을 교차해서 꽉 깍지를 낀 채로 난처하게 눈썹을 찌푸리며 웃었습니다.

 

* * *

 

뭐, 가는 길은 제법 무도회를 닮았습니다. 벽은 청결하고 금빛의 장식은 정갈하나 품위가 있습니다. 황제의 마지막 궁전이니까요. 에이치의 취향대로 꾸민 건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전학생 씨는 두리번거리며 종종걸음으로 저를 따라옵니다. 에이치의 방은 복도 끄트머리에 있죠. 전학생 씨는 이쯤에서 제법 왕자님의 궁전에 들어서는 공주님의 기분이 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방문 앞에서 멈춰섰습니다.

“에이치. 안에 있습니까? 당신의 히비키 와타루가 왔습니다.”

방에서는 대답이 없습니다.

“그럼, 들어가지요.”

저는 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습니다. 전학생 씨가 쭈뼛쭈뼛 제 등을 넘어다봅니다. 에이치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겠지요. 그도 그럴 것이, 방안에서는 미동조차 없었으니까요.

“일어나세요, 에이치. 언제까지 그렇게 누워있을 참인가요? 자아, 몸을 일으켜 기쁨으로 새 장미를 맞아주세요.”

“……대체 뭘 가져온 거야, 와타루.”

등 뒤에서 전학생 씨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에이치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가라앉았습니다. 아마 그녀가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일 겁니다.

“Amazing! 모두의 해결사, 민완 프로듀서님이 당신의 궁을 방문하셨답니다. 물론 기쁘게 맞아주시겠죠?”

그제야 에이치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는군요. 밖에 들리지 않게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환자가 몸에 밴 황제의 모습으로 돌아오는군요. 전학생 씨가 조심스럽게 방 안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에이치가 빙긋 웃자 전학생 씨가 안도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거 오랜만이야, 안즈쨩. 내 상태가 보다시피 썩 좋지가 않아,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미안하네.”

“괘……괜찮아요, 선배. 당연한 거죠. 아니, 당연히 제 쪽에서 텐쇼인 선배를 도와드려야죠. 이런 걸로 미안해하시면 제가 민망해요.”

“응. 그래도 역시 미안하니까…….”

에이치가 눈을 반 접어 웃습니다. 묘하게 반박하기 힘든 미소입니다. 그가 소꿉친구에게 자주 보여주는 것이죠.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날이 밝는 대로 떠나, 안즈쨩.”

“네?”

“이건 내가 불편해. 오늘 바로 떠나기에는 시간이 늦었으니까, 일단 입구의 손님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면 될 거야. 떠나기 전까지 식사나 시설은 모자라지 않게 제공될 거고. 그렇지, 와타루?”

이건 아니죠. 도대체가 에이치는 제 입장이라는 걸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반박하려고 하는데, 전학생 씨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선배!”

“응?”

또 예의 그 미소입니다. 전학생 씨가 입술을 깨뭅니다. 바로 뭐라 대답하기 힘든 게로군요.

“그러면 부탁해, 와타루. 나는 지금 놀라고 피곤해서 조금 쉬고 싶어. 일단 안즈를 방으로 데려다주겠어? 나와는 그 다음에 이야기하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아, 에이치가 이 장미마저 내던질 줄은 정말로 몰랐는데요. 이제는 저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군요! 일단 풀죽은 전학생 씨를 다시 데려갑니다. 에이치와 이야기를 따로 나누어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중략)……

 

방에서는 병의 냄새가 납니다. 에이치가 창문을 열어달라고 합니다. 밤바람은 건강에 해롭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창문을 천천히 밀어 열자 까만 밤이 밀려 들어오고 그제야 에이치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자에서 눈을 붙이던 저는, 다음 날 아침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음, 아니 이거 전학생 씨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아침에 가기로 했던가요. 에이치를 돌보아야 하니 데려다주는 건 무리입니다만, 에이치에게 운전수를 불러 달라고 할까요?”

“저에게 거짓말을 했군요, 선배.”

잘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건 확실하군요. 성난 얼굴의 전학생 씨가 휴대폰을 쥐고 제 눈앞에 흔듭니다.

“하스미 선배에게 연락했어요. 텐쇼인 선배의 상태가 이상하니까, 크게 바쁘지 않다면 곁에 있어 주시는 게 낫겠다고. 그런데. 선배가 화난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떠난 건 아니라면서요.”

“아아, 맞습니다. 지금 에이치의 상태는 케이토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죠. 엄밀히 말하자면 케이토는, 에이치의 차트를 들고 만의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서 각국을 누비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에이치의 상태가 악화된 원인을 의료진 누구도 구명하고 못하고 있으니, 우리는 이런 식으로 공기 좋은 곳에나 머무르고 있는 거죠. 이해가 되었나요?”

“그건, 이상해요. 아니,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제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텐쇼인 선배는 그렇게 자신을 내버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은 무대 뒤에서 산소마스크를 쓰더라도, 탈출한 사자를 보고 놀라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병이 원인불명이라고 자포자기한다고요? 이해할 수 없어요. 그건 제가 알던 텐쇼인 선배가 아니에요.”

“말했잖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래서 당신을 불렀던 거지요.”

전학생 씨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대로 서 있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하스미 선배에게 부탁을 받았어요. 본인이 갈 때까지 텐쇼인 선배를 책임지고 보아달라고.”

“안 돼, 안즈.”

에이치가 깨어났군요. 이렇게 시끄럽게 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가요.

“돌아가. 나는 네가 불편하다고 말했어.”

“선배가 그런 식이니까, 갈 수 없어요. 그렇게 되는 대로 내버려두라는 듯이 말하지 말아요. 하스미 선배와 약속을 했어요. 그러니 선배가 지금 이런 모습이어서는 갈 수 없어요.”

강경하게 선고하던 전학생 씨가 이윽고 손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선배는 제가 그렇게나 불편한가요? 한때 대립하고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당신의 편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전에도 그렇게 얘기하셨어야죠.”

그녀는 어쩐지 울컥하는 것 같습니다. 에이치가 한숨을 내쉽니다.

“……좋아.”

전학생 씨가 그제야 손을 비껴 에이치를 다시 바라봅니다.

“너 좋을 대로 해, 안즈쨩. 네가 그렇다면 내가 강제할 수는 없어. 하지만 곧 떠나고 싶어질 거야.”

어느새 환하게 날이 밝았고, 방안에 햇빛이 비추어 들어옵니다. 창가에서 새 소리가 납니다. 전학생 씨는 심경이 복잡해 보였지만, 일단은 허락받은 것만으로 안심한 듯 아까보다는 얼굴이 밝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