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night Blues

1. 십년 전, 저무는 저녁

밤이 되면 오는 것들이 있다. 어둑어둑 검게 지는 땅거미, 구름을 비추는 달, 멀리 야산에서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와, 헤드라이트를 켜고 경적을 울리며 몰려다니는 오토바이, 반짝이는 별무리, 풀잎 위에 맺히는 이슬, 그리고 형. 형은 늘 밤에 왔다.

별들이 하나둘씩 눈을 뜨는 밤이면 어린 리츠도 반짝 눈이 뜨였다. 오늘 밤엔 형이 올까? 어둑어둑한 창가에 기대어 숨을 죽이고 문틈에 가만 귀를 기울이면 온갖 소리가 귓전에 부딪힌다.

건넛집 여자아이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좀 더 떨어진 곳에서 나이프가 사기그릇에 부딪히는 소리. 수레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나, 산기슭에서 새앙쥐가 짚단을 파먹는 소리와 귀를 긁는 모든 자잘한 소리들을 지나서 다시 방 안에는 제 작은 숨소리뿐. 기다림에 지쳐 리츠는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럴 거면 차라리 밤에도 잠들었으면 좋았을걸.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시체처럼 방바닥에 누워, 한참을 눈만 깜박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들끼리 서로 대답하듯 울음소리는 점점 크게 뭉쳐 화음이 되고, 그에 섞여 야산의 늑대 짖는 소리까지 울린다. 그때가 되면 리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홀린 듯 문을 열고 집을 나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타닥타닥. 천천히 옮기던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 곧 아이는 날 듯이 밤거리를 내달리고 있었다.

개 짖는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가슴도 발걸음 못지않게 빠르게 뛰었다. 어둑어둑 저물어가는 저녁, 저 멀리 우글거리는 개들의 그림자가 보이고, 그 가운데 검푸른 옷자락으로 몸을 감싼 밤의 왕. 형은 늘 밤에 개들과 함께 나타났다.

“리츠! 오랜만이구나. 내가 오는 건 비밀로 했니?”

“응. 형 말대로 했어.”

“착하다, 착하다. 그런데 오늘은 달려들어 안기지 않니? 왜 이렇게 심통이 났어?”

“아아니야, 그런 거.”

리츠는 입술을 앙다물고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구만. 말해보렴.”

개 한 마리가 재촉하듯이 왕! 하고 짖었다. 리츠는 어쩔 수 없이 불퉁하게 튀어나온 입을 열었다.

“낮에 마오가, 나보고 동생 같댔어. 내가 형인데.”

“그 애가 키가 큰 모양이구나.”

“그건 아닌데……. 동생만 둘이라고, 듬직한 형이나 누나가 갖고 싶댔어. 나한테 이런 형이 있는 줄 알면 마오도 부러워 죽으려 하겠지? 그런데 말을 못하니까…….”

“하하, 그렇게 말해도 내 모습을 드러내는 건 무리로구나. 아무래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자는 무서워하니까.”

“정말 바보 같아. 그래서 형이 멋있는 건데.”

리츠가 볼을 푸우 부풀리자 레이는 낮게 웃으며 리츠의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렸다.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지 않겠니. 그래도 이 아이들은 사람과는 달리 정보에 휘둘리지 않는단다. 내가 올 때마다 똑같이 반겨주지.”

개들이 호응하듯 왕왕 짖자 리츠는 양 팔로 형의 다리에 바짝 붙어 매달렸다.

“부쩍 의젓한 척하던 아이가 오늘은 갑자기 어리광이구나. 너무 오랜만에 온 건가? 아하, 개들에게 겁이 났구나. 걱정 말렴, 이 아이들 모두 지금은 내 권속이란다.”

“거기, 늑대같이 생긴 애들도 있는데……. 개 맞지?”

“개나 늑대나 뿌리는 같단다. 사람에게 길들여진 쪽이 개라고 불리었지. 지금은, 확실히 내 권속이니 위험하지 않단다. 보렴.”

레이가 손짓을 하자 개 ― 인지 늑대인지 모를 동물 ― 한 마리가 옆에 다가와 섰다. 목을 슥슥 쓰다듬자 머리를 들고 혀로 손가락을 핥으며 꼬리를 흔들어 댄다.

“자아, 우리 리츠도 조금만 더 크면 이렇게 할 수 있게 될 거란다.”

조금, 조금. 그 조금이 한참 동안 크지 않아서 문제였지만. 아까 삐친 응어리가 남아서 리츠는 여태껏 뾰로통했다. 그래도 자신이 늦자라는 만큼 형이 멋지니 괜찮았다. 형제는 닮는다고 들었다. 틀림없이 나도 언젠가는 형처럼 근사한 존재가 되겠지. 리츠도 용기를 내어서 손을 내밀고, 더듬더듬 제 몸집만 한 짐승을 쓰다듬어 보았다. 작은 손가락이 털 안에 폭 묻혔다.

“폭신폭신하잖아……, 신기해!”

“하하, 다른 동물도 길들여 볼까?”

“어, 그럼 형. 사람도 길들일 수 있겠네?”

“음……, 할 수는 있지. 하지만 그건 책임질 각오가 있을 때만 해야 하는 일이야. 사람의 마음은 몸만큼이나 꺾이기 쉽단다.”

“으응, 잘 이해가 안 돼.”

“허어, 이런 건 우리 리츠에게는 아직 이른가.”

그래도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구나. 우리 동생은 내가 더 끼고 챙겨야겠어. 혀를 차던 레이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자자, 그럼 더 늦기 전에 들어가자. 선물이며 해줄 것이 잔뜩 있으니 말이야. 과자를 넉넉하게 가져왔단다. 피아노는 어떠니? 오늘도 연주를 맞춰 보련? 아, 꽃이나 차도 있단다.”

레이의 손에 이끌린 리츠가 왕왕 짖으며 따라오는 개 몇 마리를 힐끗 돌아보았다.

“연주야 좋지만, 일단 얘들부터 좀 조용히 시켜야겠는데…….”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개들이 달려와 리츠의 뺨을 핥고 꼬리를 흔들었다. 색색의 털이 옷이며 팔다리에 잔뜩 묻었다. 몸을 뒤덮을 기세로 달려들어 왕왕거리는 개들에 둘러싸여 통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결국, 남은 의문은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하지만, 형. 역시 이해되지 않아.’

뒤에 남은 개 한 마리가 길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이나 개나 책임져야 하는 건 마찬가지 아니야?’

 

 

2. 지난해, 이른 저녁

대기실에 신경질적으로 기타 퉁기는 소리가 울렸다. 코가는 소파 위에 널브러진 의상을 치울 생각도 않고 그대로 위에 앉았다. 공연을 코앞에 두고 결원이 생겨 비상사태니 의상 같은 게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급하게 옮겨온 악기가 대기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기타를 치고 음정에 맞춰 줄을 조이길 네 번쯤 했을 때, 귀에 훅 부는 입김과 함께 음산한 목소리가 울렸다. 코가는 흠칫 놀라서 요란하게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의상을 깔아뭉개고 있잖아, 코기.”

“와악, 뭐냐! 릿치냐! 사람 놀라게 하지 말라고! 형제가 이상한 것만 닮았어!”

“그리고 D음이 살짝 높아.”

“나는 너희처럼 귀가 예민하지 않단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알려주는 거잖아. 흐아암……. 아직 잠이 덜 깼어.”

“그러면 가서 자란 말이다! 깜짝 놀랐잖아!”

“안 되지, 안 되지. 갈 데 없는 멍멍이씨를 돌봐달라고 형한테 부탁을 받았다고.”

“누가 개라는 거냐? 앙?”

“형이, 너보고.”

코가는 쳇, 하고 혀를 찼다. 그리고 곧 다시 조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형의 말이라면 깨갱하는 게 영락없는 멍멍이라고 생각하며 리츠는 소파 뒤편에 몸을 기대어 눈을 감았다.

리츠는 음악을 좋아했다. 사람을 대하는 건 쉽지 않지만 악기 연주나 노래에서는 그 사람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코가의 연주에서 들리는 건 순 초조함이었다.

“흐응. 엉망이네.”

“크아, 훈수 두지 마!”

“그렇지만 진짜 엉망인걸. 자세가 그게 뭐야, 나무토막? 좀 더 편하게 앉아봐. 곡도 그런 연습곡 말고 다른 거 어때? 좋아하는 거 없어?”

긴장을 푸는 게 우선이니까,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시끄러운 멍멍이는 누가 긴장했단 거냐고 땍땍거리겠지. 다행히도 이번에 코가는 별 말 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대충 퉁기던 줄 소리가 간단한 리듬을 타더니, 금세 화려한 멜로디가 되었다. 아무리 봐도 단순해만 보이는 멍멍이의 연주라고는 믿기 힘들다.

코가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그렇지만 분명 입학할 때는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아마 그동안 많은 연습을 했겠지. 왜냐하면……. 리츠는 이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코가가 연주하고 있는 곡이 귀에 익숙했다. 레이가 좋아하는 곡조였다. 이 충직한 멍멍이씨는 분명 많은 연습을 했겠지. 왜냐하면, 레이가 그를 거두어 주었으니까.

(중략)

 

 

3. 지난해, 낮

“학원이 그렇게 시끄럽던 게 벌써 한참 옛날 일 같네.”

“한가한 소리 할 거면 연습실 청소나 해, 나루군. 캐비닛에 먼지가 쌓였잖아.”

“하지만~, 이거 꼭 2인 유닛 같잖니? 리츠쨩은 잠만 자고, 임금님은 행방불명이고. 뭣보다 나는 청소가 싫어! 리츠쨩, 저렇게까지 잠만 자는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쫑알쫑알 시끄럽네, 나루군. 남이 일하고 있을 땐 좀 조용히 해줄래?”

“어머, 정말?”

그리고 한동안 연습실 안에는 간헐적으로 물건 옮기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넓은 전용연습실 안에는 사람이 적었고 가라앉은 정적이 지나치게 무거워 사각거리는 소리마다 귀에 거슬렸다. 그래서 아라시가 다시 사근사근한 투로 말을 붙였을 때 이즈미는 토를 달지 않았다.

“엇차, 무거운 건 내가 옮겨줄게. 응, 이쪽으로. 사실 놀랐어, 이즈미쨩. 임금님이 나가고 리츠쨩도 탈력상태인데 이즈미쨩이 이렇게 앉아서 유닛을 지킬 거라는 생각은 안 했으니까.”

“딱히 지키는 건 아니지만, 내가 남아버렸으니까 말이지? 나루군도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후후. 날 세우지 마. 초조한 티가 나잖니, 이즈미쨩. 그러니까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 해. 이렇게 평화로워진 학원에서 우리 Knights가 예전 같은 영락을 누리기는 어렵잖아? 전투와 승리가 우리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무기도 무대도 없는걸.”

“뭐, 이게 황제가 원하는 소위 평화로운 학원인 모양이니까. 그런 것치고 뒤처리는 꽤 난폭했지만?”

황제의 군림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세상이 바뀌었다. 모든 드림페스는 학생회의 허가를 거쳐야 했기에 자유로운 개최가 어려워졌다. 평화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았으니 변화한 세상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한 발짝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 대단한 오기인 중에서 셋이 사라질 거라고.”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