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의미 없는 단문, 우울함. 세미 아포칼립스, 재해 이후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미카와 슈.

주간미카슈 – 농담

에서 이어지지만 어차피 의미불명이므로 굳이 안 읽으셔도 됩니다.

 

***

 

카게히라가 돌아왔다. 멀리에 있었지만, 귀를 긁는 목소리 덕분에 겨우 알아챌 수 있었다. 카게히라의 목소리는, 이 탁한 세상에 미안하겠다 싶을 정도로 높고 명랑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카게히라가 왔는지 아닌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시야가 계속 흐릿한 것이 모래바람이 자욱한 탓인지, 아니면 며칠 전부터 뱃속과 이마를 벌레처럼 간지럽히는 열 때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상한 것이 세상이 이상한 탓이거나, 아니면 세상이 이상한 것이 우리가 이상한 탓이거나.

“쨔잔. 이것 봐라, 스승님~! 운좋게 구해왔다 아이가.”

미카가 장난감을 자랑하는 어린아이처럼 큰 가방을 팔 위로 번쩍 들고 흔들었다. 슈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가, 매캐한 공기가 목구멍으로 들이치는 바람에 콜록거리며 금방 입술을 닫았다. 카게히라는 어떻게 저렇게 발랄한지 모를 노릇이었다. 이렇게 탁한 세상에서 어떻게 이렇게 힘차게 다닐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 가방을 갈취하는지……. 기침이 나는 바람에 이번엔 누구를 죽였냐고 묻지 않을 수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

“자아, 스승님. 이것만 쭉 들이키면 스승님도 금방 기운을 낼 거다.”

가방을 정신없이 뒤적거리던 미카가 작은 약병을 들어올리며 슈에게 씩 웃어보였다. 지금 재해 지역에 돌고 있는 정체불명의 열병에 대한 항생제. 슈는 구역질이 이는 것을 느끼며 미카의 가슴에 손가락 두어 개를 가져다대었다. 상대를 밀어낼 힘조차 없는 상태에서 하는 저항이었다.

“왜, 스승님?”

미카가 천진한 눈으로 묻는다.

“그러니까 너는 또, 나 때문에 사람을 죽인 거지…….”

“스승님은 항상, 그래. 잔걱정이 많다. 아무 생각 말고 일단 들이켜 도. 이거 의외로 달고 맛있고, 약효도 금방 올 기다. 금방 졸리거든. 그럼 그냥 한숨 푹 자면 된다.”

“지금은 아냐. 구역질이 날 것 같아…….”

힘없이 고개를 내젓던 슈가 문득, 얼굴을 들었다.

“카게히라.”

“응!”

“이 약이 어떤 식으로 듣는지, 어떻게 알고 있지?”

미카는 별 말을 다 한다는 듯 헤실헤실 웃었다. “아, 다른 사람을 보다보니까~!”

“그럴 리가. 약이 보였으면, 그 전에 네가 죽였겠지.”

호선을 그리며 위로 올라간 미카의 입꼬리 끝에, 무언가 석연치 못한 기색이 걸렸다. 색이 밝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너, 설마…?”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츠키 슈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간다. 모두가 병들어 가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미카만 건강하지? 아니, 미카만 건강할 리가 없다. 건강하게 보이고 싶었을 뿐이다. 무거운 것이 쾅, 하고 머리를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스승님.”

계속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지만, 한 번도 다시 굴복하고 싶지는 않았던 절망이.

“스승님, 그런 표정 하지 말고.”

온 몸을 휘감고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자신이 아픈 건 괜찮아도, 카게히라가 병들었다는 것만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만은 견딜 수 없다. 그리고 카게히라는 그걸 알았던 게다. 알기에 숨겼던 거다. 비탄이 흐느낌이 될 것 같았다.

“스승님.”

미카가 단호한 얼굴로 약뚜껑을 열더니 한입에 들이켰다. 그리고 슈의 옷깃을 잡아 자신 쪽으로 당겼다. 밀어낼 수 없었다. 네가 너무 안쓰럽고, 북받치고, 끔찍하면서도 사랑스러워서. 입 안으로 강제로 들어오는 물약은, 정말로 달았다. 저물어가는 세상에서 이렇게 달콤한 것은 애정뿐이니 밀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혀를 얽다가 겨우 떨어지고 보니, 흐릿하게 보이던 세상에 선명한 색채가 돌기 시작한다. 벌써 약효가 있는 건가? 아니, 그저 해가 저물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이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붉은색으로 물들어간다. 슈는 이 색채가 아마 미카가 가져다 준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지, 이 빛바랜 세상에 있는 모든 색채 자체가 미카가 아닐까? 너는 제 몸을 불태우면서 저물어가는 태양이 아닐까? 점멸하는 세상에서 언젠가 너는 떴다가, 붉게 가라앉았다가, 제 몸을 불사르면서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끊겼다.

어떤 새의 꿈을 꾸었다. 새는 하늘을 날고 싶었으나, 죽어가는 사람의 시취에 이끌려 땅에 내려왔고, 그 사람이 주는 몇 조각 빵과 호의에 이끌려 곁을 맴돌게 되었다. 때문에 본래 창공을 날 수 있었을 새는 사람을 따라서 계속 땅을 기고 있다. 그리고 이츠키 슈는 그 새의 이름을 알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는 작은 까마귀, 내 거추장스럽고 사랑스러운…….

눈을 떴을 때는 곁에서 미카가 앉은 채로 졸고 있었다. 슈는 푹 꺼진 아이의 뺨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가져다 대다가, 차마 대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이것은 죄이다. 우리가 함께하고 교합함으로써 수많은 죄를 낳았다. 차마 만질 수 없었다. 하지만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슈는 잠깐 망설이다가, 미카의 어깨 위에 가볍게 머리를 기댔다. 어깨 너머로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자는 척 하고 있는 것을 금방 눈치채 버려서, 녀석이 얄궂으면서도 귀여웠다.

이츠키 슈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재해가 일어난 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슈는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매일 자기 전마다 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어느 날이든 마지막에는, 결국 하나의 이름만 거듭해 외게 되는 것이었다. 카게히라 미카, 카게히라 미카, 카게히라 미카……. 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지울 수 없는 이름을.

슈는 몸에 바로 전해지는 미카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차라리 이 모든 게 장난이었으면 좋겠어. 네가 나로 인해 지은 모든 죄와, 지금까지 했을 수많은 거짓과 노력과 그로 인한 달콤함과, 너의 기만과 그걸 모른 체 하는 나의 기만이. 그리고 이는 전부 나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이 모든 것을 피할 수도 없고, 결코 피하지도 않을 거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