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미카슈 – 농담

간만에 주간좀 쓰려는데 잘 생각이 안나서 도전의식을 느끼다가 그만 소재가 산으로.. 비몽사몽간에 써서 짧고 두서없습니다. 아포칼립스, 망취 주의

 

***

 

소녀가 그 남자를 보고 처음 느낀 감상은 기이함이었다. 모래바람이 부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기묘할 정도로 단정하게 정돈된 셔츠를 입고, 감정 없이 말간 얼굴로 서 있는 남자. 그 남자는 소녀를 보고 놀라는 기색도 없이 곧이 걸어왔다.

“그 발목은 다친 건가?”

“네, 당신은…….”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경계하며 몸을 빼던 소녀는, 그가 자신을 홱 안아 가볍게 들어올리자 당황해 얼굴을 붉혔다.

“너무 경계하지 마라. 그 발목을 계속 쓰게 둘 수는 없는 게다.”

“죄, 죄송합니다. 좀 놀라서…….”

“미안해 할 것 없어. 세상이 이 지옥이 된지 벌써 한 달째인가.. 너도 지금까지 많은 꼴을 보았겠지.”

남자는 자욱한 모래먼지 사이로 부옇게 보이는 하늘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더니, 희미하게 비치는 태양빛을 보며 말했다.

“빛을 본다고 모두가 빛을 향해 걸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한 달 전, 전국에 재해가 있었다. 해안에 파도가 몰아치고 땅이 갈라져 흙과 지반이 드러나고 오염되었다. 전기도 물도 길이 파괴되어 공급되지 않고, 지하 생태계의 미생물로부터 처음 보는 병이 돌았다.

라디오를 통해 겨우 들은 이국의 뉴스에서는, 병의 치료법이 밝혀질 때까지 재해 지역에 가까이 가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은 깨달았다. 우리는 버림받았다. 흙바람이 부는 세상에서 재해로 고립된 사람들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 헬기를 통해 구호 물품이 뿌려졌고, 그것은 화폐 이상의 가치와 권력이 되었다. 굶지 않고 살아남아 망가진 생태계의 야생동물을 피하고, 다친 곳을 깨끗한 물로 씻기 위해서 사람들은 더 많은 구호품을 원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을 습격했다. 사람의 첫번째 사냥감은 사람이었다. 그런 지옥에서 이 남자만은 묘하게도, 놀라울 정도로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 어디로 가는 건가요……?”

“조금 더 가면 동행인과 함께 지내는 캠프가 있어. 거기에서 네 상처를 씻기고 붕대를 감을 거다.”

“동행인이요?”

“너무 걱정할 것 없어, 네 또래의 깡마른 남자아이 하나다.”

“그리고 먹을 물도 모자라실텐데, 그래도 되는 건지…….”

“지금 어떤 병이 도는지 대충 알고 있지 않나? 그렇게 상처를 노출시키면 금방 감염되어 죽고 말 게다.”

“그래도 지금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걸요. 자기 물품을 남을 위해 쓴다니…….”

그렇게 말하자, 남자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우리는 사람이다. 신이 있다면 이런 꼴을 절대로 놔두지 않아. 모두가 빛을 향해 걸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나는 그러고 싶어.”

그제야 소녀는 남자의 품 안에서 겨우 안심한 얼굴로 밝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남자는 여전히 무심한, 그러나 아까보다 훨씬 누그러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이츠키…….” 그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귀를 찢을 듯한 총성이 울렸다.

탕.

소녀는, 아니 방금까지 소녀였던 시체는 품 안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손안에 들고 있던 칼이 땅에 데구르르 떨어진다. 남자는 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검은색으로 얼룩진 재킷을 입은 소년이 있다. 슈는 달려가 미카의 옷깃을 잡아챘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카게히라……!”

“조심해야지, 스승님. 칼 보면 모르나? 그 아, 스승님을 해치고 구호품을 갈취할 생각이었다. 모르는 사람 아무나 덥석덥석 상종하지 말라고 내가 말 했나 안했나? 까마귀 고기를 먹은것도 아니고, 우리 스승님은 왜이렇게 말을 해도해도 까먹을까?”

“하지만 그 아이는 다쳐있었다. 그대로 놔두면, 지금의 환경에서는 틀림없이 죽어……!”

“맞다. 그리고 그 아를 살리고 스승님이 죽을 뻔했지.”

옅은 보라색 눈과 양쪽 색이 다른 금색과 하늘색의 눈이 한참 말 없이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침내 슈가 짓씹듯이 내뱉었다.

“이렇게 남의 피로 몸을 씻으며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아니. 스승님은 그러지 못해.”

미카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대답했다.

“사람 말을 뭘로 듣고……!”

“스승님은 그러지 못해. 그러면 나를 이 지옥에 혼자 두게 되니까.”

미카가 다시 침착하게 말했다. 슈는 주저앉듯이 미카의 가죽재킷을 내려놓았다. 재킷은 굳은 피로 얼룩져 온통 덕지덕지 새까만 색이었다. 그리고 그 피의 대부분은, 미카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묻힌 것이다. 슈는 짧게 탄식했다.

“이런 건 내가 원한 게 아니야.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냐, 카게히라…….”

“내는 스승님에게 필요한 거라면 뭐든 한다. 아마 그런 일이 없었으면 내는 스승님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일을 했겠지. 아르바이트나, 무대나……. 하지만 지금 스승님한테 필요한 건 이런 거니까. 알잖아, 스승님. 빛을 본다고.”

슈는 그 말을 받아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두가 빛을 향해 걸을 수 있는 건 아니지.”

두사람이 처음으로 ‘습격’을 받았을 때, 그래서 미카가 슈를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 그리고 그 이후로, 슈가 미카를 위로하기 위해 몇 번이고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은 확실히 위로로서 효과가 있었고, 그리고 그 이상의 효과가 있어 카게히라 미카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니, 이것을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슈는 가끔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고, 무기를 탈취하고, 시체에서 필요를 취해 모아두는 지금 이 존재를, 자신이 알던 카게히라 미카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한때는 참 어렸던 아이. 쉽게 겁에 질려 불안한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던, 그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꾸지람을 하면 어째서인지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던 깡마르고 앳된 소년. 한때는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그래서 지금도 사랑스러운.

“그러니까 스승님은 나를 버리지 못해.”

슈는 거듭 반복되는 미카의 말이 애원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슈는 다시 미카의 옷깃을 쥐고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시야가 가려져 빛은 보이지 않고, 다만 모래 맛과 피 냄새가 났다.

 

그날 밤 슈는 잠든 미카의 옆에 나란히 누워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지옥같은 세상에서도 하늘만은 변함이 없고 별만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서, 꼭 예전의 그 좋은 시절에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예전에도, 별이 빛나는 밤에 너를 처음 만났지. 그때 너는 온통 꾀죄죄한 차림새를 한 채 눈을 빛내며 말을 걸었고, 나는 이유도 모르고 너의 손을 잡았지. 그때 이후로 죽 함께해서 여기까지 오고 말았지. 차라리, 이 모든 게 농담이었으면 좋았을 거야. 그날 별이 빛나는 밤에 우리가 만났던 것도, 그리고 내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너를 보면서 그 처음부터 설레었다는 사실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