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슈그녀 길게쓸시간은없고 슈가챠5성주세요

그렇게 어려서, 그렇게 감히 낼 욕심도 없이 겁 모르고 손을 뻗는 욕망도 없이 투신한 애정이라면 차라리 신앙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그 당사자는 신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니 그 소년이 괴이쩍도록 창백한 남자로 자란 것은 무엇 하나 이상할 것 없었다. 억지로 위로 잡아늘인 양 마디가 가느다란 몸, 얇게 꽉 다문 입술, 핏기 없이 하얀 뺨, 그 위에 늘 무언가를 엄정하게 재단하듯이 가느다랗게 뜬 날카로운 눈동자까지. 그 눈으로 스스로를 강퍅하게 잡아채고 억누르며 남몰래 하는 애정은 겨우 십 년을 채운 후 진정으로 신앙이 되었고 그녀는 성모가 되었다. 이제 그는 영원이 된 성모의 제단에 백합을 바친다. 마리아의 꽃, 장례식의 꽃, 그리고 순결의 꽃. 차마 사제도 못 되는 사제가 고스란히 바친 죽은 청춘의 꽃. 결국 그는 한 번도 사랑을 멈추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죽어 영원이 되고 사랑은 차가운 땅 위에 비석으로 박제되었기에. 그래서 오늘도 꽃잎은 하얗고 남자의 뺨은 꽃잎처럼 창백하고 눈동자는 채 피우지 못한 청춘의 묘비.

그렇게 어려서 그렇게 감히 낼 욕심도 없이 겁 모르고 손을 뻗는 욕망도 없이 투신한 애정이라면 차라리 신앙이었다. 이제 정말 꿈조차 꿀 수 없냐고 울던 날에는, 차라리 신앙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커미션 – 에이안즈

레뮤님이 신청해주신 단챠형 커미션입니다! 학교 근처의 먼발치에서 안즈를 발견하고 바라보며 완벽하게 빛나는 안즈를 손에 넣기를 바라는 에이치, 독백 위주, 애정어린 집착 냄새..라고 하셔서 좋아하실 것 같은 느낌으로 써봤습니다 ㅇ.<..!

 

***

 

오후 2시 50분. 시침과 점점 가까워져 가는 분침을 확인하며 에이치는 초조한 기분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정장을 입은 그는 유메노사키의 교문에서도 눈에 띄어, 지나가는 사람 몇이 그를 보고 수군거렸다. 가끔 알아보는 기색을 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멀리에서 수군대다가 사라지는 것이 전부다. 나름대로 작년까지 ‘황제’로서 군림했던 남자였으나, 그가 졸업하고 유메노사키에 발을 끊고 나서 한때의 전설은 한때의 전설로만 남았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청춘은 현실 속에 묻혀버린다. 시간은 한 번도 그의 편인 적이 없었다.

‘바보 같네.’

한때 그렇게 집착했던 청춘이 덧없이 흘러가버린 것을 피부로 느끼며 에이치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유메노사키 근방에 있는 기업체와의 회견에 굳이 대표인 직접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은 바로 에이치 자신이었다. 회견은 한 시간 후, 출발하기까지 남는 시간은 고작해야 30분. 지금 그의 몸은 결코 좋은 상태가 아니었고, 바깥에 서서 쌀쌀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동안 오한이 들었다. 텐쇼인 에이치는 결코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원하는 것은 곧바로 팔을 뻗어 손안에 움켜쥐어야만 하는 성미였다. 지금까지 그 과정에서 망가뜨린 것들에게는 미안함을 안고 있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시간은 한 번도 그의 편인 적이 없었기에.

하지만 어쩐지 지금은 얌전한 아이처럼 교문 앞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는 것이었다. 어째서? 에이치는 자문했다. 그리고 문득, 겨울이 끝나가던 날의 졸업식을 떠올린다. 몽글몽글한 눈송이가 흩날리며 시야를 부옇게 하고, 졸업을 축하하러 온 후배들 중에서 이제는 낯이 익은 한 소녀를 마주치고, 자신도 모르게 짓궂은 소리를 했던 순간을.

“그동안 고마웠어, 안즈쨩. 너에게는 많은 고생을 시켰구나. 이렇게 내가 졸업하는 게, 네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려나?”

마지막까지 얄궂은 소리에 소녀는 당황한 표정을 했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순간까지 이런 얼굴을 보며 즐거워하는 자신도 참 악취미라고 생각하며 에이치는 자조했다. 하지만 소녀는 곧 거짓말처럼 웃는 것이었다.

“마지막처럼 말하시네요.”

“그야, 이제 졸업이잖아.”

“선배는 계속 업계에 있으실 거잖아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저도 금방 따라갈게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순진한 말을 하던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고 에이치는 피식 웃었다. 너는 내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오한이 가라앉았고, 학생들의 시선이 아까처럼 신경쓰이지 않았다. 곧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왁자지껄 교실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그중에 책가방을 대충 걸친 갈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있었고, 세상이 흐드러졌다.

이제 3학년이 된 안즈는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티 없는 웃음을 입가에 띠고 있었다. 여자라기엔 너무 티가 없고, 소녀라기엔 이제 부쩍 여자 태가 나는 그녀는 뒤따라가는 한 무리의 학생들 틈에서 의젓하게 앞장서고 있었다. 신설된 프로듀서과의 아이들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유메노사키는 다시는, 한 명의 독재자가 이끄는 학원은 되지 못할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나는 언젠가 네가 나를 부수어주기를 기다렸지. 하지만 너희는 나에게 복수하지 않았어. 순진하게도 모든 것이 잘 될 것처럼 굴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에이치는 걸어가는 안즈를 지켜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순진한 꿈을 꾸는 소녀는 짧은 머리가 길어 이제 허리까지 내려왔고 눈웃음이 짙어졌다. 키가 좀 더 커서 치마가 껑충 올라갔고 그럼에도 아직 보조개가 핀 뺨에 앳된 기가 남아있었다.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대로인 부분 혹은 달라진 구석 하나하나가 눈에 박혔다. 그리고 그런 것을 의식하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네가 언제야 다 필지 궁금해. 순진한 네가 졸업을 하고 이 지독한 토양에 나오면 너는 견디지 못하고 엉망진창이 되어 시들어버릴까, 아니면 내 앞에서 버티었듯이 만개해서 짙은 향기를 피우게 될까. 에이치는 눈을 반 접어 웃었다. 즐겁고 황홀했다. 아, 나는 이걸 위해 여기까지 왔구나. 어떤 쪽이든 기대되어 견딜 수가 없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다림이 두근거린다는 걸 알았어. 처음으로, 시간이 내 편을 들어주었어.

그러니까 지금은 이 기다림을 만끽해야지. 에이치는 다시 한 번 시계를 확인하고 등을 돌렸다. 회의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았지만, 아직은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만으로 이 두근거림을 만끽할 셈이었다. 주머니에서 기기를 꺼내어 차를 부르려는 찰나, 등 뒤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배!”

등을 돌리자 말간 낯에 웃음기를 띠고 손을 흔들며 이 쪽으로 달려오는 안즈가 보인다. 꽃이 피듯이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이고, 하얀 얼굴이 흔들리며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에이치는 손을 들어 안즈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그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 늘 그랬듯, 그녀의 당황한 얼굴을 바라보며 아이처럼 웃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손안에 쥔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로 웃었다.

주간미카슈 – 농담

간만에 주간좀 쓰려는데 잘 생각이 안나서 도전의식을 느끼다가 그만 소재가 산으로.. 비몽사몽간에 써서 짧고 두서없습니다. 아포칼립스, 망취 주의

 

***

 

소녀가 그 남자를 보고 처음 느낀 감상은 기이함이었다. 모래바람이 부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기묘할 정도로 단정하게 정돈된 셔츠를 입고, 감정 없이 말간 얼굴로 서 있는 남자. 그 남자는 소녀를 보고 놀라는 기색도 없이 곧이 걸어왔다.

“그 발목은 다친 건가?”

“네, 당신은…….”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경계하며 몸을 빼던 소녀는, 그가 자신을 홱 안아 가볍게 들어올리자 당황해 얼굴을 붉혔다.

“너무 경계하지 마라. 그 발목을 계속 쓰게 둘 수는 없는 게다.”

“죄, 죄송합니다. 좀 놀라서…….”

“미안해 할 것 없어. 세상이 이 지옥이 된지 벌써 한 달째인가.. 너도 지금까지 많은 꼴을 보았겠지.”

남자는 자욱한 모래먼지 사이로 부옇게 보이는 하늘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더니, 희미하게 비치는 태양빛을 보며 말했다.

“빛을 본다고 모두가 빛을 향해 걸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한 달 전, 전국에 재해가 있었다. 해안에 파도가 몰아치고 땅이 갈라져 흙과 지반이 드러나고 오염되었다. 전기도 물도 길이 파괴되어 공급되지 않고, 지하 생태계의 미생물로부터 처음 보는 병이 돌았다.

라디오를 통해 겨우 들은 이국의 뉴스에서는, 병의 치료법이 밝혀질 때까지 재해 지역에 가까이 가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은 깨달았다. 우리는 버림받았다. 흙바람이 부는 세상에서 재해로 고립된 사람들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 헬기를 통해 구호 물품이 뿌려졌고, 그것은 화폐 이상의 가치와 권력이 되었다. 굶지 않고 살아남아 망가진 생태계의 야생동물을 피하고, 다친 곳을 깨끗한 물로 씻기 위해서 사람들은 더 많은 구호품을 원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을 습격했다. 사람의 첫번째 사냥감은 사람이었다. 그런 지옥에서 이 남자만은 묘하게도, 놀라울 정도로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 어디로 가는 건가요……?”

“조금 더 가면 동행인과 함께 지내는 캠프가 있어. 거기에서 네 상처를 씻기고 붕대를 감을 거다.”

“동행인이요?”

“너무 걱정할 것 없어, 네 또래의 깡마른 남자아이 하나다.”

“그리고 먹을 물도 모자라실텐데, 그래도 되는 건지…….”

“지금 어떤 병이 도는지 대충 알고 있지 않나? 그렇게 상처를 노출시키면 금방 감염되어 죽고 말 게다.”

“그래도 지금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걸요. 자기 물품을 남을 위해 쓴다니…….”

그렇게 말하자, 남자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우리는 사람이다. 신이 있다면 이런 꼴을 절대로 놔두지 않아. 모두가 빛을 향해 걸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나는 그러고 싶어.”

그제야 소녀는 남자의 품 안에서 겨우 안심한 얼굴로 밝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남자는 여전히 무심한, 그러나 아까보다 훨씬 누그러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이츠키…….” 그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귀를 찢을 듯한 총성이 울렸다.

탕.

소녀는, 아니 방금까지 소녀였던 시체는 품 안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손안에 들고 있던 칼이 땅에 데구르르 떨어진다. 남자는 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검은색으로 얼룩진 재킷을 입은 소년이 있다. 슈는 달려가 미카의 옷깃을 잡아챘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카게히라……!”

“조심해야지, 스승님. 칼 보면 모르나? 그 아, 스승님을 해치고 구호품을 갈취할 생각이었다. 모르는 사람 아무나 덥석덥석 상종하지 말라고 내가 말 했나 안했나? 까마귀 고기를 먹은것도 아니고, 우리 스승님은 왜이렇게 말을 해도해도 까먹을까?”

“하지만 그 아이는 다쳐있었다. 그대로 놔두면, 지금의 환경에서는 틀림없이 죽어……!”

“맞다. 그리고 그 아를 살리고 스승님이 죽을 뻔했지.”

옅은 보라색 눈과 양쪽 색이 다른 금색과 하늘색의 눈이 한참 말 없이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침내 슈가 짓씹듯이 내뱉었다.

“이렇게 남의 피로 몸을 씻으며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아니. 스승님은 그러지 못해.”

미카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대답했다.

“사람 말을 뭘로 듣고……!”

“스승님은 그러지 못해. 그러면 나를 이 지옥에 혼자 두게 되니까.”

미카가 다시 침착하게 말했다. 슈는 주저앉듯이 미카의 가죽재킷을 내려놓았다. 재킷은 굳은 피로 얼룩져 온통 덕지덕지 새까만 색이었다. 그리고 그 피의 대부분은, 미카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묻힌 것이다. 슈는 짧게 탄식했다.

“이런 건 내가 원한 게 아니야.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냐, 카게히라…….”

“내는 스승님에게 필요한 거라면 뭐든 한다. 아마 그런 일이 없었으면 내는 스승님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일을 했겠지. 아르바이트나, 무대나……. 하지만 지금 스승님한테 필요한 건 이런 거니까. 알잖아, 스승님. 빛을 본다고.”

슈는 그 말을 받아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두가 빛을 향해 걸을 수 있는 건 아니지.”

두사람이 처음으로 ‘습격’을 받았을 때, 그래서 미카가 슈를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 그리고 그 이후로, 슈가 미카를 위로하기 위해 몇 번이고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은 확실히 위로로서 효과가 있었고, 그리고 그 이상의 효과가 있어 카게히라 미카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니, 이것을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슈는 가끔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고, 무기를 탈취하고, 시체에서 필요를 취해 모아두는 지금 이 존재를, 자신이 알던 카게히라 미카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한때는 참 어렸던 아이. 쉽게 겁에 질려 불안한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던, 그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꾸지람을 하면 어째서인지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던 깡마르고 앳된 소년. 한때는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그래서 지금도 사랑스러운.

“그러니까 스승님은 나를 버리지 못해.”

슈는 거듭 반복되는 미카의 말이 애원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슈는 다시 미카의 옷깃을 쥐고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시야가 가려져 빛은 보이지 않고, 다만 모래 맛과 피 냄새가 났다.

 

그날 밤 슈는 잠든 미카의 옆에 나란히 누워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지옥같은 세상에서도 하늘만은 변함이 없고 별만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서, 꼭 예전의 그 좋은 시절에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예전에도, 별이 빛나는 밤에 너를 처음 만났지. 그때 너는 온통 꾀죄죄한 차림새를 한 채 눈을 빛내며 말을 걸었고, 나는 이유도 모르고 너의 손을 잡았지. 그때 이후로 죽 함께해서 여기까지 오고 말았지. 차라리, 이 모든 게 농담이었으면 좋았을 거야. 그날 별이 빛나는 밤에 우리가 만났던 것도, 그리고 내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너를 보면서 그 처음부터 설레었다는 사실까지도.

츠무기가 불쌍한 이야기

좋습니다. 오늘 들려줄 이야기는 한 사람이 없어지는 이야기예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소년은, 무엇이든 그럭저럭 해내는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년은 다른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좋았고, 고맙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책을 읽고, 춤을 추고, 길가에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 가게에 들여보내고, 자신이 먹던 과자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법 많은 아이들이 교단에 모이자 사람들은 소년을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소년은 제법 키가 크고 얼굴이 멀끔하고, 남을 위해서는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저 아이에게는 성령이 깃들었다. 신께서 간택하신 아이가 틀림없어. 그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세가 약한 사이비 종교, 사람들의 희망과 헌금을 통해 돈을 버는 교단에서는 남들에게 내세울 것이 필요했으니까요. 소년은, 아오바 츠무기는 그렇게 교단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마다 자신을 향한 기대와 바람이 가득히 깃든 것을 알았습니다.

소년은 어느 때보다 기쁜 마음으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했습니다. 아침에는 식사 대신 기도를 하고 낮에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설명하고 저녁에는 사람들을 상대했습니다. 따로 밀폐된 방에서 고해성사를 듣고 사람들의 상담을 들었습니다. 소년은 어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어도 증오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온화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죄를 사하고 위안을 얻는 데 지폐 몇 장이면 되었습니다.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개중에는 감정이 복받쳐 소년을 움켜쥐거나 때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소년은 내내 온화했습니다.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나가 온갖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소년은 내내 쉴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하고, 소년의 손을 잡고 감격하고, 편집증적으로 죄를 뇌까리고, 흐느끼고, 남을 저주하고, 소리를 지르고, 따귀를 때리고 원하는 것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소년을 성령과 같다고 칭찬했거든요. 소년은 다른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좋았고, 고맙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좋았습니다. 소년은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렇지만 늦은 밤 모두가 떠나고, 불을 꺼 어두운 방에서 홀로 이불을 끌어올려 머리 위까지 덮으면 목구멍까지 꺽꺽 치솟는 울음과 함께 문득문득 찾아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몸 어느 한 구석에 불이 붙고, 머리에 열이 올라 눈이 뜨거워지고 남을 원망하고 미워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오바 츠무기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남에게 친절하다고 칭찬을 듣는 자신인데 이런 추악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니 믿고 싶지도 않았고 견디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 상냥하고 친절하게 웃어주는 따뜻한 사람들 모두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이 싫어서, 도무지 견딜 수 없어서 아오바 츠무기는 매일 밤마다 남을 미워하는 자신을 조금씩 떼어내어 헌금함에 담았습니다. 원망하고 증오하는 추악한 자신을 작게 작게 조각내어 함에 눌러담았습니다. 그렇게 500번째 밤이 되던 날, 함은 가득히 찼고, 아오바 츠무기는 남지 않았습니다. 원히던 대로 원망하는 기능이 사라지고, 자신을 자신으로 인지하는 능력조차도 남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답니다.

왜 울고 있나요, 나츠메 군? 제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한 건 당신이었잖아요.

그냥 미카슈

이제는 눈치채지 못한 사람이 드물게 되었다. 그 애는 그 애를 좋아한다고. 늘 곁에 있고 싶어하고,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싶어하고, 눈길을 끌고 싶어서 목소리를 높여 뛰어다니고, 그 정도로는 모자라 새벽 숨부터 오후 단꿈까지 소유하고 싶어한다고.

“뭐, 생각해보면 전부터 그런 낌새가 있었지…?”
“이츠키 선배 본인만 빼고 다 알걸. 어련히 모르는 척 해줘야지.”

그렇게 주변을 떠도는 재잘거림 속에서 이츠키 슈는 언제나와 같았다. 가늘고 긴 팔을 들어 아침 요리를 하고, 옷의 치수를 재고, 레이스를 뜨고 무대를 그렸다. 그러므로 카게히라 미카는 제 마음도 언제나와 같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미 터질 것 같은 마음도 더 커질 수가 있는 모양이었다.

“카게히라. 앞치마를 부탁하마.”

미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나오자, 앞치마를 입은 채 반쯤 등을 돌린 슈가 보였다.

“어…? 이거 매달라고?”

대답 대신 슈가 뒷걸음질로 두어 발짝 다가가자 미카는 엉성한 품으로 등 쪽에 달린 끈을 양손에 쥐었다. 미카는 아직도 잠이 덜 깨어 몽롱한 눈을 들었다. 코앞에 살짝 숙인 하얀 뒷목이 보인다. 아침에 샤워를 한지 얼마 안 됐는지 달큰한 샴푸 냄새가 나고, 머리카락 끝에 살짝 물기가 남아 있다.

“뭐하고 있는 거지?”

“어, 어? 이게 잘 안 매지네. 손이 자꾸 미끄러진다.”

하지만 공중에 뜬 손에는 매듭을 지을 의지가 없다. 미카는 반쯤 숙인 슈의 뒷목 위로 고개를 숙였다. 숨이 닿을 듯, 혹은 겨우 닿지 않을 듯. 미카는 그대로 가만 눈을 내리깔았다. 당신은 이럴 줄은 꿈에도 모르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슈가 뒤를 홱 돌아보았다.

“그만.”

예기치 못하게 곧이 마주한 얼굴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그만해. 카게히라.”

완강한 목소리, 평소보다 더 가늘게 뜬 눈매. 날카로운 표정을 보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웃음이 나는 것이 순서였다. 몇 번이나 상상해온 순간이었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되고 마는구나. 모를 리가 없지. 누구라도 눈치채는 마음을 당사자만 모를 리가 없지.

“…미안, 스승님.”

그 정도로 말하고 넘어가면 좋을까. 하지만 더는 없는 척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가슴에, 눈가에 울컥 치솟는 것이 있었다.

“기분 나쁘지. 옆에 계속 붙어 있는 놈이 이러고 있고. 언제부터 알았나? 기분 나빴지? 어떻게 모른척 했나?”

“당연히 기분 나쁘지.”

그렇게 말하고 슈는 살며시 웃었다. 허물어지는 것 같은 미소였다.

“그렇게 이도저도 아닌 채 옆에서 간질거리고 있으면, 당연히 기분 나쁘지. 카게히라. 세상에 사랑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귓가에 속닥거리는 소리로, 독백 같은 욕망이 남았다. 네 애정이 온당하게 내 것이라고 말해줘.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눈짓부터 손짓까지 전부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줘. 슈는 마디가 앙상하게 튀어나온 손을 잡고 제 허벅지 위로 올렸다. 옷감이 버석거리는 소리가 나고, 손가락이 살 위로 움푹 들어간 자국이 생긴다.
그리고 짧은 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