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씨씨 조금

도무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비행정의 선체는 일정한 주기에 맞추어 끊임없이 부드럽게 진동했다. 떠밀리는 것처럼 타이렐은 창문 쪽으로 몸을 기울여 이마를 기댔다. 까마득한 고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흡사 바람에 물결치는 먼지나 안개 덩어리 같았다. 타이렐은 검붉은 빛을 띤 이 파도의 정체를 알고 있다.

비행정이 속력을 줄이며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아득히 먼 아래에서 일렁이던 광경이 점점 뚜렷해진다. 물결의 정체는 피를 뒤집어쓴 사람의 군집이었다. 아니 사람이었던 존재들이었다. 이 도시는 이제 살아 움직이는 시체의 도시가 되었다. 바로 타이렐 자신이 구동시킨 프로그램이었다.

그가 해석한 코덱스. 그가 진전시킨 연구. 그가 구축한 프로그램. 그가 봉합한 단말. 그가 도전한 목표.

광장에 상륙한 타이렐은 결과의 재검토를 위해 침착하게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갈레온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도중에 시체 몇 구를 베었다. 조각나거나 타다 남은 시체의 잔해가 죽지 않고 꿈틀거렸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의 수렁을 헤쳐 타이렐은 기어이 그가 정복한 죽음의 앞에 도착했다. 희열에 질식할 것 같았다. 그에게서 비롯해 이 도시를 뒤덮어버린 감정의 원류를 이제 타이렐은 안다. 질투.

인형에서 떠오르는 빛을 향해 타이렐이 중얼거렸다.

“결국 내가 이겼어.”

“당신이 나를요?”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빛은 여자였다. 안경을 끼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 수 년 전에 사라져 보지 못한 여자였다. 밝은 밀짚색 머리칼이 태양 같다. 눈이 부셔 넋을 놓은 사이 그녀가 키득거렸다.

“그녀도 죽음의 권속이니까. 나는 당신의 인형으로 만들어져 죽음이 되었지. 그러니 당신은 이제 나를 이길 수 없어요.”

여자가 웃으며 밝은 청색 머리카락으로 변한다. 그리고 저를 향해 내민 타이렐의 손에 해골 모양의 지팡이를 휘두른다. 뱃가죽이 갈라지고 복부와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들어차 세상을 꽉 막는다. 따신 피와 함께 생각과 상념이 요동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

기필코 이기려 했던 여자가 죽었을 때, 어떻게든 승리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시꺼먼 것을 뿌리뽑기 위해서 그는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미끄러지고 구르고 실패하고 좌절하다가 다시 기어서 정상에 올랐다. 마침내 죽음을 정복했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높은 희열로부터 고꾸라진 장소는 가장 낮은 밑바닥이었다. 그 자신의 죽음.

그런데, 왜 이런 곳에 있는지 그는 알 수가 없다. 부옇고 꿈결같다. 선명하고 몸에 스민다. 세계가 이상하다. 바람이 불었다. 언젠가 보았었으나 이제 다시는 보이지 않아야 할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죽 훑어 거쳐, 타이렐은 마주한다. 눈을 깜박인다. 그는 아직 숨을 들이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꿈인가? 기만인가? 바람인가? 타이렐은 다시 한 번 손을 뻗는다. 이 감촉은 목소리는 꿈도 환상도 아니다. 당신은 분명

나의 시
나의 이름
내가 잊고 살았던 세상의 모든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