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리리] 외면

진단메이커 키워드 : 나비, 한번만 도와줘, 작별

 

머리통이 크기 전 쌍둥이는 많이도 같이 들판을 쏘다녔다. 다람쥐를 쫓고 잠자리를 잡고 개울에서 물장구를 쳤다. 한동안은 프리드리히가 나비 수집에 재미를 들였다. 검은 날개를 팔랑거리는 제비나비 하며, 붉은 점이 알알이 박힌 붉은점모시나비하며, 날개에서 유난히 인편이 묻어나는 부전나비, 색이 고운 노랑나비. 그 중에서 특히 희귀한 것이 율리시스 나비였다. 큰 날개가 어른 손바닥만하고 오묘한 푸른 빛을 띄는 그 나비는 베른하드가 보기에도 퍽 고왔다. 그러나 내색은 않았다. 프리드리히는 유독 그 나비를 베른하드 앞에서 뽐내곤 했다. 그깟 나비가 뭐가 그렇게도 중요하고 좋을까. 베른하드에게는 프리드리히가 그 나비 잡고 먹이 구해주겠다고 들판을 쏘다니다가 굴러서 다치지나 않는 게 더 다행인 일이었다. 베른하드가 그렇게 관심없어하면 프리드리히는 샐쭉해 가지고는 가버리곤 했다. 그럴수록 더 부러움을 내색할 마음은 없었다.

며칠 새 프리드리히는 유난히도 열심히 나비를 돌보고 있었다. 빛깔이 고와야 한다며 이것저것을 가져다 먹이려 하고 이상한 게 묻지 않았나 살피고. 참 유난이다 싶었다. 그렇게 프리드리히는 또 베른하드를 끌고 산으로 나갔다. 그런데 아차, 신이 나 있던 프리드리히는 그만 깎아지른 경사를 못 보고 넘어지고 말았다. 채집통이 열렸다. 나비가 곧 날아갈 듯 했다. 발이 푹 빠져 바로 잡지를 못하는 채로 프리드리히는 애처롭게 형을 불렀다. “도와줘, 베른… 한 번만 도와줘, 베른!”

베른하드는 멍하니 프리드리히를 보고 다시 나비를 보았다. 부아가 치밀었다. 따지고보면 자기가 이렇게 또 프리드리히의 뒤치닥꺼리를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날아가 버려라. 멀리멀리 날아가 버려라. 파아란 날개가 채집통 문에 끼어 파들파들거리다가, 결국 파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어디까지 하늘이고 어디까지 나비인지 알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시원섭섭하면서, 죄책감이 몰려왔다. 프리드리히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녀석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작별해 버렸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얼마 후가 두 아이의 생일이었다. 아직도 프리드리히를 대하기가 멋쩍던 베른하드는 부러 가서 동생에게 선물은 없냐고 툭툭 쳤다. 프리드리히가 힘없이 대답했다. “날아가 버렸어. 다시 안 와.”

그 후로 한동안 프리드리히의 무기력함은 풀리지 않았다. 베른하드와도 쉽게 말을 섞지를 않았다. 화내는 것보다 더 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그렇게 프리드리히와 떨어져 본 적 없던 베른하드는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쁜 꿈이 도무지 끝나지가 않는 것 같아서, 앞으로 살면서 나쁜 일만 벌어질 것 같았다. 다행히 어느 순간 둘은 다시 사이좋은 쌍둥이 형제로 지내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된 건지 베른하드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그리고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이렇게 둘이 서로를 의지하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이렇게……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다음부터였는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전에도 그리 서로를 애지중지하던 둘은 부쩍 서로 의지하게 되었고 분신처럼 늘 같이 붙어 지냈다. 베른하드도 모르지는 않았다. 아니 잘 알고 있었다. 동생이 간혹 웃으며 자신을 보는 눈빛. 살과 살이 닿을 때 서로의 몸 동작이 느려지는 것. 사는 게 그런 걸 어쩔 수 없잖아, 하고 안타깝게 웃음짓는 동생을 보면서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하고 얹히듯이 끓어오르는 것.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술에 취해서 몸을 제대로 못 가누던 동생이 방에서 나가려는 베른하드를 뒤에서 끌어안았을 때, 목에 더운 숨이 닿아오고 긴 손가락이 움푹 패인 뺨을 따라 그리다가 입술을 만질 때, 베른하드는 멈칫해서 뒤를 돌아보고, 눈이 마주쳐 버렸다. 불처럼 뜨겁고 분명했다. 놀랐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몇 번이고 바라고 상상했던 순간이리라. 그래서 늘 생각했듯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팔을 뿌리치고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동생의 앓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줘, 베른. 한번만 도와줘, 베른…”

여기서 동생을 뿌리치면, 다시 나쁜 꿈을 꾸게 될까? 내가 나쁜 형인 걸까? 아니, 이렇게 된 내 생애 자체가 나쁜 꿈인 건 아닐까?

나쁜 꿈이라도 좋았다. 베른하드는 뒤돌아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