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크로키잡빗치

크로우가 일요학교에서 수업을 제대로 듣는 경우는 드물었다. 빈둥거리면서 딴 짓을 하거나 졸기가 일쑤였다. 그러다가 얼마 안 지나 시스터의 눈에 띄어서 질문을 받곤 했다.

“크로우, 일어나.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도력 혁명이 누구로 인해서 일어났다고?”

“엡스타인 박사가 도력기를 개발하면서 50년 전에 일어난 거죠?”

“분명히 자고 있었는데? 너, 전에 도력사에 대해서 배운 적 있니?”

“그건 아닌데……, 그냥 다 아는 걸 배우는 기분이에요.”

 

일요학교는 따분하다. 수업을 들어도 항상 이미 아는 내용을 배우는 것처럼 별 재미가 없었다. 친구들이랑 농담 따먹기를 하는 건 좀 재미있나. 그렇지만 가끔 크로우는 친구들이 너무나 어리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일부러 학교를 빠질 생각은 없었다. 혼자는 심심하다. 방과 후 크로우는 혼자 집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빈 집에 시계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아저씨는, 언제야 들어올까. 아저씨는 언제나 바쁘다.

“너희 아저씨는 A급 유격사라서 그래.”

언젠가 놀러온 누나 – 피 클라우젤이라는 이름이었다 – 가 칭얼거리는 크로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었다.

“그것도 현재 최연소지. 제국에서도 드문 인재야. 그래봤자 린은 호구라서 누구 부탁도 거절 못하고 저 모양으로 바쁘지만.”

가차 없이 말하는 누나의 말투가 크로우는 꽤 맘에 들었다. 이 누나라면 빼지 않고 알려줄 것 같았다.

“누나는 아저씨에 대해 꽤 잘 아는 것 같네.”

“그럴까나.”

“아저씨는 나한테 자기 얘기를 별로 안 하거든. 예전에 뭘 했는지, 나를 어쩌다가 주웠는지, 그런 거.”

“린이 비밀이라면 나도 비밀.”

“알긴 아는구나?”

피는 딱히 부인할 생각도 없는 듯 여상히 특유의 고양이같은 눈을 내리깔았다. 적어도 숨기려고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이 맘에 들었다.

“그러면 하나만 알려줘, 누나. 아저씨는 왜 기억도 없는 나를 입양해 놓고 아빠라고는 못 부르게 해? 아저씨는 내 과거를 아는 거지? 아저씨에 대해 말 못하면 나에 대해서 알려줘. 나는 대체 뭐야?”

“음~, 그래, 그런 거구나.”

피가 생각에 잠겨 중얼거리기 시작했기에 크로우는 피의 표정을 읽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크로우가 눈치를 살피는 것보다 피가 일어난 크로우를 똑바로 보는 것이 먼저였다. 고양이과의 날렵한 동물 같은 눈과 마주친 크로우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 멈추었다.

“그래, 조금 걱정이네. 그렇지만 성을 줬잖아, 크로우 슈바르처. 그러니까 일단 안심해도 될 거야.”

도무지 영문을 모를 소리였다.

 

크로우는 좁은 골목에 있었다. 담이 높아서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골목이 지금 크로우가 자리잡은 곳이다. 어둡고 습한 골목에서 크로우는 재채기를 했다. 이거 약값까지 벌려면 돈이 꽤 깨지게 생겼는데, 구할 구석이 있을까. 생각에 잠겨 있는데 발소리가 들렸다. 크로우는 얼른 손등으로 고양이세수를 했다. 어쨌거나 벌이에 한 몫을 하는 것이 이 얼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말간 소년의 얼굴을 보며 머뭇거리는 상대가 바랄만한 것을 크로우는 알고 있다. 짧은 반바지를 입은 크로우는 씩 웃으며 다리를 벌렸다.

 

크로우는 번쩍 눈을 떴다.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집은 여전히 적막히 시계소리만 흘러가고 있었다. 또, 꿈. 이래서 혼자는 싫다. 이왕 꿈이라면 아저씨가 나오는 꿈이면 좋을걸. 가끔 꿈에 나오는 아저씨는 지금보다 좀 더 앳된 듯한 모습이다. 매일 아저씨 꿈이라면 평생이라도 잠에 들 텐데, 대부분은 악몽에 가까워서 크로우는 옆에 아저씨를 두고서야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그 놈의 꿈, 기분 나빠. 책이라도 읽을까. 서재에 들어간 크로우는 한 구석에서 ‘토르즈 사관학교’라는 제목이 붙은 앨범을 발견했다.

 

 

피로가 쏟아졌다. 집에 가자마자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지만 일단 크로우에게 인사를 하고 씻겨주고 양치는 잘 했는지 확인해야지. 방긋방긋 웃는 어린 크로우의 얼굴을 생각하니 기운이 나서 린은 웃으며 문을 열었다. 문소리가 들리면 언제고 달려 나와서 인사를 하는 것이 크로우인데, 어쩐지 오늘은 아무 소리도 없었다. 저녁이니까 이미 잠이 들었으려나? 린은 허탈하게 웃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말을 잃었다. 크로우가 책상 위에 앉아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평소의 크로우라면 린을 보자마자 좋다고 뛰어내려서 품에 안길 텐데, 어딘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크로우가 린을 빤히 바라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앨범을 덮었다.

“……!”

“표정을 못 숨기네, 아저씨. 그렇구나, 이게 나구나. 크로우 암브러스트. 이게 내 원래 이름인 거지? 괜찮은 것 같아.”

“크로우…….”

“나 사실 그동안 많이 섭섭했다고. 멋대로 주워와 놓고서, 왜 아빠라고 부르진 못하게 하는 거야? 아저씨는 젊고 잘생기고 능력 있으니까 나 같은 건 짐이라서 그러는 것 같아서, 투정도 못 부리고 있었다고. 그런데 이제 알 것 같아. 아저씨, 날 좋아했어?”

“그럴 리가 없잖아, 크로우. 내가 설명해줄게. 다 설명해줄 테니까 일단 거기서 내려와서 얘기를…….”

크로우가 자리에서 가뿐하게 내려왔다. 그리고 달려들어 린에게 안겼다. 영락없는 어린아이다. 그래, 지금의 크로우는 기억을 잃은 어린애일 뿐이잖아. 안심되는 기분 끝자락에 묘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린은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가 크로우에게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고개를 숙여 뺨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크로우가 팔을 뻗어 목을 감았다. 열세 살의 크로우가 린을 올려다보며 웃는다.

“린. 날 좋아했지?”

“아…….”

린은 어쩔 줄 몰라 입을 벌렸다.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입에 붙은 거짓말을 하기엔 늦어버린 참이다. 어떻게 하지.

“나는 기뻐, 아저씨.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이럴 줄 알았으면 데려오지 않는 게 좋았다- 라고 생각하는 동안 크로우가 목을 감은 채 입을 맞췄고 린은 머리가 새하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