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 미카 입양하는 얘기

 

 

애완동물을 데려오는 감각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카게히라 미카는 본가에서 순종적이며 얌전했고, 색이 예쁘고 보기 좋았으며, 밥도 그리 많이 먹지 않았다. 선뜻 손을 내밀자 믿을 수 없다는 듯 깜박대는 두 눈이 인형 같았다. 앞으로 이 무해하고 무력한 생물의 삶을 책임지게 된다는 전능감이 있었다.

가엾은 아이를 데려와 멀끔하게 키워내, 결혼까지 지켜보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 흉내를 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청결한 옷을 입고, 예절을 배우고, 훌륭한 숙녀로 자라난 코제트가 외간남자와 결혼해 떠나자 장 발장은 결국 상심하고 쇠약해져 죽고 말았던가? 느닷없이 불길한 결말이 떠올라 슈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유메노사키 학원의 ‘제왕’인 자신이 그렇게 몰락할 리가 없지 않은가.

명예, 돈, 친구가 있으면 세상 대부분의 일은 쉬워진다. 이츠키 슈는 열일곱의 나이에 세 가지를 전부 갖추고 있었다. 안 그래도 늘 내심 본가에서 나오고 싶었고, 마침 저번 방송의 출연료가 들어와 통장의 잔고도 적지 않게 두둑하니,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기에 딱 알맞은 시기였다. 이츠키 슈는 홱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졸졸 따라오던 카게히라가 멍하니 눈을 깜박인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눈동자 두 쌍이, 깜박깜박. 티 없이 서글서글 말간 눈동자와, 치켜 올라간 눈매와, 희고 갸름한 턱선과, 빼빼 말랐지만 제대로 자리 잡은 골격이,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소재인지도 모르는 예술품이 거적때기나 다름없는 허름한 옷에 둘둘 싸인 채 반짝반짝. 위아래로 훑어보며 씩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자 카게히라는 자신이 뭘 잘못했나 싶어 허둥거리다 멍청하게 마주 웃는다. 이 이츠키 슈쯤 되니까 이렇게 먼지투성이가 된 소재도 발굴해내는 것이다. 노력도 하지 않는 어리석은 범재들이, 오기인이라고 불리는 친우 녀석들이 아름다운 Valkyrie의 새 멤버를 보고 경탄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니토를 발굴해 최고의 인형으로 조율했듯이, 이 녀석은 그 누구보다도 오롯이 빛나는 보석으로 연마될 것이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대충의 코스는 정해두었다. 집은 작업할 공간이 딸린 곳으로 세 채를 봐두었고, 세탁기와 청소기는 소음이 적은 것으로, 식기와 가재도구 몇 가지는 일단 집에서 안 쓰는 것을 정리해 꾸려놓았다. 그러므로 갓 상경한 카게히라와는 가장 먼저 집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이 이츠키 슈의 안목에 달할 리는 없지만, 동거인의 최소한의 동의는 구하는 것이 좋겠지.

첫 번째 집은 마트와 상점가에 인접해 있었다. 소란스러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학원에 등하교하는 동선이 가장 가까운 곳이다. 계약료는 조금 비싸지만 봐둔 곳 중 가장 잔여공간이 넓은 집이었다. 집 주인의 안내를 받으며 심플한 마감을 꼼꼼히 훑어보다가 뒤를 돌아보니, 카게히라는 침대 위에 앉아 퉁퉁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이것 봐라, 스승님. 침대가 무지하게 크다. 쿠션도 좋구마! 내 집에서는 이불만 덮고 지냈는데, 이런 데서 자게 된다니 진짜 신기한기다.”

“쯧, 지금 뭐하는 거냐! 예의에 어긋난다. 내려와라, 카게히라!”

“아, 신난다! 스승님도 일로 와봐라. 이거 진짜 재밌는데.”

“그만 둬라, 카게히라!”

슈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무언가 둔탁하게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응아아……?”

멍한 얼굴로 일어난 미카의 몸 아래로, 아래로 푹 꺼진 매트리스가 힘없이 흔들렸다.

 

 

두 번째 집은 공원에 가까운 곳이었다. 집 앞에 가만히 서서 냄새를 맡으면 공원의 풀냄새와 뒤섞인 꽃내음이 물씬 풍겨오는 곳으로, 바닥에 파스텔톤의 들꽃이 자잘하게 피어 있었다.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광경이건만 카게히라는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시체마냥 힘없이 뒤를 질질 따라오는 녀석의 몸짓이 맘에 들지 않아 슈는 뒤따라오는 카게히라를 찌릿 노려보았다.

“카게히라.”

“응, 응아아! 스승님!”

“네 녀석이 살 집이다. 볼 마음이 없는 거냐?”

“아, 아니! 볼끼다, 볼끼다!”

“아주 땅바닥에 붙겠군. 도무지 못 봐주겠어. 잘 들어라, 카게히라. Valkyrie는 아첨하지 않는다. 한 번 실수했다고 고개를 내리지도 않는다! 내 인형이 되려면 그 사고방식부터 뜯어고쳐야겠군. 고작 몇 만 엔에 네 녀석을 내다버리지 말라는 거다. 얼굴을 들어라!”

“으응, 내 스승님 하는 말 뜻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억쑤로 멋지고마. 그라믄, 내도 같이 들어가서 보면 되는기가?”

“흥, 그 정도는 내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해라. 말을 잘 듣는 건 좋지만 너무 멍청한 인형은 좋아하지 않아.”

그렇게까지 말한 후에야 카게히라는 좀 죽상이 풀려서 슬그머니 눈에 생기가 도는 것이었다. 뭐,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닐 테니 외지에 와서 이래저리 적응이 덜 된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슈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 지역에 터를 잡고 활동하던 미술가가 살던 곳이었다. 남자 고등학생 두 명이 살기에는 조금 좁을지도 모르지만, 화가가 구석구석 아크릴로 그려 놓은 주변 꽃과 정경의 낙서가 마음에 들어 골라두었다. 집 자체만으로도 예술적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카게히라 녀석도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구석에 쭈그려 앉아 꽃의 그림을 들여다다보고 있었다.

“와, 이거 진짜 신기하구마. 꽃 위에 있는 게 진짜 나비인 줄 알았데이. 근데 만져보니까 안 잡혀가꼬 아닌 줄 알았다. 어라, 까슬까슬하네.”

“잠깐, 카게히라……! 그건 건들지 마라!”

“어어, 떨어지네. 어어……?”

금방 날아갈 것 같던 금색 나비가 어느새 카게히라의 손끝에서 마른 물감 조각이 되어 부스러졌다. 옆에 서 있던 집주인이 발을 뚝 멈추고 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게 뭐지? 무해하고 무력하고 내가 돌봐주어야만 하는 생명체는, 어디로 갔지? 자기가 뭘 했는지도 모르고 유리알 같은 눈을 예쁘게 깜박깜박하는 카게히라를 보며 멍하니 서 있던 슈는 순간 벼락처럼 깨달았다. 이 녀석은 비글이다. 귀엽고 작고 천사처럼 눈이 예쁘지만, 왕왕 뛰어다니며 발에 닿는 것마다 부서뜨려 버린다.

 

 

세 번째 집은, 지금까지 본 집들에 비하면 울타리도 낮고 단출했다. 워낙 조촐한 집이어서인지 집주인은 바쁜 용무가 있다고 집 앞까지 두 사람을 데려다주고 떠난 후였다. 어느새 오후가 되어 햇살이 가까웠고, 구름이 나지막이 벚꽃 가지 사이로 흘러갔다. 가지 끄트머리에 진한 분홍색 꽃망울이 움터 있었다. 카게히라 녀석이 입학해서 정신이 없을 때쯤 한창 벚꽃이 하얗게 흐드러지겠지. 슈는 발치에 떨어진 봉오리 하나를 주워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이는 내부 역시 단출했다. 목재로 댄 바닥에 늦은 햇빛이 쏟아들었다. 슈는 상처가 많은 바닥을 천천히 쓸어보았다. 무던하고 아늑한 방에는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있었다. 어릴 때 자주 놀러가던 친구의 집을 닮은 듯도 했다. 집이 갈 곳이 되지 못하는 아이가 지내기에는, 어쩌면 오히려 이런 곳이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슈 자신이 그랬듯이.

“단출하지만 썩 나쁘지는 않군. 네가 보기엔 어때, 카게히라.”

카게히라는 선뜻 대답하지 않고 우물쭈물거렸다. 그 모습이 답답해 혀를 찼다.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아니, 스승님 좋은 방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내가 보는 게 뭐 중요하나.”

“젠장, 네 녀석이 뭐라도 말을 해야 내가 결정을 하지 않겠어!”

답답함을 못 이겨 빽 소리를 지르자 카게히라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대……, 대체 뭐냐!”

“미안하다. 내, 너무 신나서……. 스승님이, ‘우리 집을 보러 가자’고 하는 게 너무 신나서, 내 스승님한테 얹혀사려는 것뿐인디, 속으로 착각하고 있던 것 같다. 미안타, 스승님. 내 미안타, 흐윽…….”

“시끄럽다, 정신 사나우니 조용히 해라!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는, 아부지 집에 신세지는 거였으니께……, 우리 집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래서 내 주제도 모르고 내 집 고르는 것마냥 신나버린기다. 내 그만 스승님 방해하지 않고 바로 짐 싸서 조용히 집에 돌아갈게. 집 보상비는, 어떻게든 부쳐서 갚을 테니께. 너무 심려치 말고……. 고마웠다, 스승님.”

젠장. 슈는 혀를 쯧 차고 훌쩍이는 녀석의 손을 붙잡았다. 급히 손을 당기자 손등을 덮은 소매가 걷혀 까만 멍자국이 드러났다.

애완동물을 데려오는 감각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불결한 곳에서 제 어버이에게 천대당하며 불우한 환경에 방치되어 있는 비쩍 마른 강아지나 까마귀 같은 녀석을, 내가 어서 구해주어야 한다는 정의감이나 불안감에 사로잡혀 급하게 데려왔는지도 모른다. 훌쩍이고 있는 녀석을 보았을 때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동정인지, 방치된 예술품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그것도 아니면 욕심 섞인 섣부른 충동이었는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고작 열일곱 살짜리 고등학생이 한 살 어린 아이를 일부러 데려오겠다고 생각했던 그 충동적인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카게히라 미카가 발갛게 부은 두 눈을 들어 슈를 쳐다보았다. 이츠키 슈는 아마 이런 것이 자신의 인형에 대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카게히라.”

“으응.”

“이 나를 뭘로 보는 거지?!”

슈가 다시 얼굴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미카가 어안이 벙벙해져 눈을 크게 떴다.

“그저 심심해서 너를 데려왔다고 생각했나? 내 인형은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그저 멋으로 유메노사키의 제왕이라고 생각하나? 최소한 네 녀석의 버러지 같은 품행을 감싸줄 정도의 소양은 있다는 거다. Valkyrie는 완벽이다. 네 녀석이 아무리 거치적거리는 실패작이어도 내 실과 설계로 감출 수 있어. 그리고, 마드모아젤을 봐라. 오래된 앤틱 인형이지만 내 소중한 보물이지. 설령 시간이 지나 네놈이 폐품이 되고, 완전히 재기불능이 되어도 내가 공들이면 다시 조율해낼 수 있다는 거다. 이제 와서 멋대로 벗어날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너는 이미 내 실 안에 있어. 이해했나? 그 학습능력 없는 머리에도 이 정도로 말해 뒀으면 알아들었겠지?”

“으응, 아니…….”

다시 뒷목이 띵해왔다. 혈압이 팍 오르는데 카게히라가 헤헤 웃었다. 그러고보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비글은, 눈만큼은 천사처럼 예쁘던가.

“스승님 하는 말, 내는 제대로 모르겠고……. 그래도 이기는 알 것 같다. 스승님은 내 행운이다. 아부지랑은 반대야. 고마워서 우짜지. 내는, 이렇게 재주도 재물도 없고 실수투성이라, 스승님한테 보답할 방법이 하나도 없는디. 지금 내 이렇게 빈손이라, 주고 싶어도 줄 게 하나도 없다…….”

“쯧, 보답할 생각 따위 말아라. 네 녀석이 나한테 보답이라니 가당키나 한 소릴 해야지. 주제넘다, 카게히라.”

“그래, 생각났다! 그라믄 나도 스승님이 폐품이 되어도 안 버릴게! 스승님이 완전히 재기불능이 되어도 내가 옆에서 조율해줄게!”

“뭐어어? 감히 네 녀석이 유메노사키의 제왕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지금 나를 저주하는 거냐?”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역시 미안타, 내 이렇게 눈치가 읎어서! 그치만, 지금 줄 게 없으니 나중에 갚는 수밖에 읎잖나.”

“쯧, 됐다. 말을 말자. 앞으로 가르칠 게 잔뜩이겠군. 네 그 빈 머리에 교양과 복종을 채워넣어 주지. 나는 네 녀석에게 도움 받을 정도로 형편없지 않아. 내 조율과 인도는 완벽하니, 너는 이제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 인형으로 명령만 가만 따르면 되는 거다. 니토, 니토를 만나야겠군……. 니토를 보면 너도 완벽한 인형이라는 게 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될 거다.”

“응! 그 윽수로 이쁜 누나 내도 좋다!”

“형이다.”

“에에엑? 거짓말! 내를 바보로 아는기지! 안 속는다!”

“하아……, 말을 말자. 내일 보면 알겠지.”

“응아, 놀리지 마라!”

카게히라는 작은 새처럼 쉴 새 없이도 떠들었다. 빈 방 안에서 두 사람이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날이 저물었고, 봄이 되고, 벚꽃이 피었다가는 졌다. 그렇게 아늑한 집에서 마드모아젤의 낡은 안구를 두어 번 바꾸어 줄 때까지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