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열병. 한 사람의 사망원인으로 머리에 새기기에는 지나치게 덧없는 단어였다. 문득, 카게히라 미카가 꼭 그런 모양으로 자신에게서 사라지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번듯한 이름도, 흔적도 자취도 없이, 처음부터 그에게 없었던 것처럼. 하기사 그랬다면 이렇게 무리한 부탁을 했을 리 없다. 이츠키 슈는 지금 남극에 있다.
사망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것은 슈가 어리석기 때문은 아니었다. 카게히라 미카는 결코 위생상태가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곳에서 오래 지냈고, 그런 일을 했었다. 언제 어느 균이 몸에 들어 언제부터 약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응당 그래야 했던 것처럼 미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의 이유를 알기 위해 마지막까지 따져보는 것이 이츠키 슈가 그 어리석은 까마귀를 위해 행할 수 있는 마지막 어리석음이었다.
어리석고, 민첩하지 못하고, 늘 실수투성이에, 과거까지 무던하게 곱지 못해 그렇게 죽어버린 그 아이였으나 마지막 모습만큼은 더없이 인형다웠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진즉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어야만 했다. 사투리도 표준어도 되지 못하는 말을 더듬거리다가 못 들어주겠다고 호통을 치자 아이는 내가 뭐 그렇지, 하며 헤헤 웃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카게히라 미카는 완벽하게 바른 표준어를 일상에서 구사했다. 하면 되는데 안 하고 있었나. 그러게, 스승님. 내가 멍청했네.
실수가 잦던 아이가 제로콤마 일 초까지 어긋나지 않는 무대를 섰다. 노래하는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었다. 초조할 때 자꾸 다리를 떨고 손가락을 깨물던 아이가 이제는 시선을 곧게 두고 허리를 꼿꼿이 했다. 그렇게 차례차례 슈가 지적하던 모든 것이 ‘고쳐졌을’ 때, 미카가 물었다. 스승님, 나는 이제 괜찮은 인형이야? 슈가 무덤한 목소리로, 그렇군. 이제 꽤 흠잡을 데가 없게 되었군. 흠 없는 인형이다. 이렇게 대답하자 미카는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고 말했다. 스승님. 나 얼마 남지 않았어.
시체의 상체는 양호하다. 미카는 더 보기 싫게 야위기 전에 빨리 죽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 아이는 마지막 남은 돈을 전부 흉터 수술비에 쏟아부었다. 더 이상 이츠키 슈가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런 것을 바랄 것 같느냐고 소리를 지르자 미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서는 마드모아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스승님은 죽은 사람을 오래 기억하잖아. 만약에 내 인형을 만든다면 얼룩투성이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내 잘못이었을까? 나 때문에 그 아이가 비뚤어진 걸까? 돌이켜 보아도, 그렇게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졸업 후에도 함께 살았다. 고등학생 때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카가 장을 보고, 슈가 아침을 하고, 집 앞에 떨어진 벚꽃을 주워 마드모아젤의 머리에 장식하고, 무대를 연습하다가, 녹초가 되어 돌아와 바느질을 하다가, 슈가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미카가 담요를 덮어주다가 뺨에 입을 살짝 맞추고, 슈가 그만 눈을 뜨면 불을 껐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새고 난 후에는 별을 보았다. 쌀쌀한 새벽의 뜰에서 미카는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더듬더듬 별자리들의 이름을 불렀다.
스승님, 저거 보이나. 저쪽 밝은 별이 북극성이다. 응, 그 노란 별이랑, 그 아래 주황색 별 보이나. 거기까지 사이에 별 세개 보이제. 쭉 이어서, 고 옆에 있는 별들까지 하면 작은곰자리인기다. 곰 안같다고? 헤헤, 내 보기도 그래…. 근데 그거 아나? 북극성이란기는 정해진 게 아니라 그냥 천구 북쪽에 있는 별을 부르는기다. 오래 전에는 다른 별이 북극성이었다 카지 않나. 지금 남극성은 없고, 대신 남십자자리라고 길잡이별이 있거든. 건 위도가 높아서 지금 여기서는 못 보고, 훨씬 더 남쪽에, 내 고향에 가면 잠깐씩은 보인다. 언젠가는 스승님이랑 같이 보고 싶으네.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미안하다. 그런데 스승님 지금 얼굴 빨개지지 않았나? 농담이다. 깜깜해서 안 보이는걸. 반~짝 반짝 머리위에 도는 별만 보이지. 나는 별이 좋다. 수십 년이고 수백 년이고 안 변하잖나. 아무리 땅 위에서 사람들이 추태 부리고 난리를 쳐도 저건 반짝반짝, 안 변하는기다. 그러니까 이렇게 행복할 때 별을 봐 둬야지, 나중에 봐도 지금이 생각나지 않겠나.
돌이켜보면 카게히라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슈 자신이 얼마나 힘들지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녀석을 원망해도 되는 것이다. 운반중인 시신이 무거웠고, 얼어붙은 뺨에는 이제 감각이 없었으며, 팔과 다리가 뻣뻣했다. 미카가 죽은 후의 하루하루가 꼭 그랬다. 아침식사를 먹어줄 사람이 없었고, 꽃이 떨어져도 꺾어올 사람이 없었고, 옆에서 함께 잘 사람이 없었고, 카게히라 미카가 없었다. 집 안에, 자주 가던 가게에, 뜰에 무대에 거리에 세상에 우주에 아무 것도 없었다. 휑하니 비어 온통 새하얀 눈과 얼음밖에 보이지 않는 남극의 설원이 가슴에 사무쳤다. 아무 의미 없는 무채색의 세상에 남은 나에게 너는 무엇을 바라며 이런 것을 부탁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너에게 꽤 쌀쌀맞았다. 네 나름의 복수인 걸까. 이제 내게 정을 줄 수 있는 시간은 끝났기에 원망만이 남은 걸까. 그렇대도 마지막 부탁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설원 위에 미리 확인해둔 장소가 보인다. 슬슬 하늘이 어둑해지고 있었지만 날이 완전히 저물기 전에 어떻게든 도착해냈다. 슈는 장치를 설치하고 시신을 바닥에 고정했다. 레이스와 원석과 금으로 점철된 의상 위에 천을 덮었다. 평균 영하 50도의 날씨에서, 너는 이제 얼어붙을 것이다. 핏기 없이 새하얗게 되어, 완벽한 인형인 그대로. 흠결도 없이, 핏기도 체온도 세상에 남겨줄 사랑도 없이. 여기서 눈물을 흘리면, 틀림없이 얼어붙을 것이므로. 슈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놀라고 말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는데, 불빛도 건물도 없는 남극의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검게 빈 하늘에, 쏟아질 듯 별이 반짝거렸다. 눈이 멀 것처럼 빛이 알알이 충만했다. 시리도록 쏟아지는 빛의 향연 속에서 슈는 눈으로 더듬듯 푸른 빛깔의 별 네 개를 찾았다. 아무 것도 없는 남극에서 길잡이가 되어 주는 남십자자리. 아, 네가 가리켰던 별이다. 너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보던 별이 반짝인다. 봐, 카게히라. 우리가 저 우주에서 점멸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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