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그녀

CeZ0JQPUkAA3h4a 치님 슈그녀 그림 보고 써봤습니다! 동인설정이 가득이라 좀 2.5차창작같네요..ㅇ>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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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가본 지 올해로 꼭 삼 년이 되었다. 길다면 나름대로 긴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과 장면은 기억 속에 물감으로 마구 덧칠해놓은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별다를 것도 없는 평범한 일본식 주택이었다. 집 앞 너른 마당에는 잡초가 파릇하게 자랐고 덩굴이 붉은 담벽을 타고 올랐다. 현관문에서부터 까슬까슬한 벽돌을 손끝으로 세어서 열세 번째 되는 돌에, 류군과 키를 겨루면서 하늘색 분필로 그어 놓은 줄이 있었다. 기억을 되짚던 슈는 여기서 피식 웃었다. 아니, 이건 십 년쯤 전의 기억이다. 열세 살 때 담벼락을 새로 칠해서 낙서는 사라졌으니까. 그 집에 대한 기억은 십 년 전부터 삼 년 전까지가 뒤죽박죽이 되어 있다.

마을 가에 자리잡은 그 집은 한여름에도 물 먹은 것처럼 서늘했다. 땅끝까지 태울 듯이 내리쬐는 땡볕과 시끄럽게 울리는 벌레 소리 속에서도 고요하고 고즈넉했다. 현관문 앞에서 옷매무시와 머리모양을 확인하고 제자리를 맴맴 돌다가, 결국 침을 꿀꺽 삼키고 초인종을 누른 후부터 그랬다. 누구신가요. 그 목소리가 들리는 찰나부터, 세상은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키류 부인은 많이 움직이지도 않았고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았다. 표정조차도 적어서 하얀 목 위에 갸름한 얼굴이 서늘한 인형 같았다. 그녀는 인형이 망가졌다며 우는 슈를 엄정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잘못된 건 고치면 돼. 그래도 안 되면, 다시 만들면 되고. 너른 벽에는 가검과 여성용 도복이 걸려 있었고, 긴 금발을 단정하게 옆으로 넘겨 묶은 그녀는 그 아래에서 바느질을 했다. 흰 실을 길게 뽑아 바늘귀에 끼워서 끝을 야무지게 묶고, 솜을 채우고 천을 기워서 망가진 인형 다리를 말끔하게 붙였다. 집중으로 몸이 기울어져 가지런히 묶은 금발이 조금 흐트러졌다. 저 머리카락으로 바느질을 한다면 더 예쁠 텐데,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녀는 고치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어린 슈는 그녀의 곁에 앉아 그녀가 한 땀 한 땀 뜨는 모든 것을 배웠다.

하지만 그 야무진 손으로도 부상 입은 자신의 다리만은 고칠 수 없었다고,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괴롭지 않아요?

어린아이는 철없는 질문을 속 편하게도 했다.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수련에 임하는 무도가처럼 엄정하다.

그래서 수예를 시작했지.

외롭지 않아요?

누구든 사람이라면 가끔은 외로워. 그래도, 지금은 네가 있잖니.

그러면 내가 계속 있으면 되겠네요. 외롭지 않게, 매일 찾아와서 이 집 안에 있을게요. 같이 옷을 만들고 레이스를 뜰게요.

천을 꿰매던 손이 멈칫했다. 그녀가 박음질하던 것을 중간에 놓은 것은 처음이었다. 놓은 천이 바닥에 붉게 흐트러졌다. 희고 가는 손이, 얼굴 앞을 하얗게 스쳐 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슈.

놀랍게도 그녀는 인형이 아니었다. 꽃이 피듯이 해사하게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서늘한 줄만 알았던 집에 밝은 빛이 들었다. 분홍색 옷소매가 눈앞에서 투명하게 일렁거려 눈이 아프고 목이 메었다. 그동안 이 집에서 지낸 모든 시간의 의미가 새롭게 밀려들어 어지러웠다. 가느다란 손끝이 다시 스르르 천을 집어 바느질을 시작했다. 조밀하게 움직이는 바늘 끝이 가슴을 꿰는 것 같았다. 한 땀 한 땀 엄정하게 심장을 저미는 것 같았다.

그날부터 세상의 축은 뒤틀려 그곳에 박음질되었다. 지금까지 십 년 동안 그랬다. 고정되어서는 안 되는 곳에 고정된 채로 마음도 몸도 자라서 뒤틀린 열병처럼 들끓고는 했다. 잘못된 건 고치면 돼. 그래도 안 되면 다시 만들면 되고. 그녀의 흰 얼굴과 서늘한 목소리가 눈앞에 선하다.

그래서 슈는 끊임없이 바느질한다. 정교하게 어그러진 그의 세계를 한 땀 한 땀 수를 놓고 톱니바퀴를 설치하고 황동으로 장식하고 노래에 실어 세상에 피로한다. 이 마음은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 결과는 누구라도 인정하리라.
하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해도 고칠 수도, 다시 만들 수도 없는 것도 있어서. 결국 바라보게 되는 것은 금발의 인형이었다.

그때 그 감정을, 나는 그때는 차마 말하지도 언어로 정의하지도 못했지만.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가 있다면요.

단 한 번만, 다시 나에게 기회가 있다면요.